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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死後2년>上.전환기 맞은 북한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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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일은 김일성(金日成)사망 2년째가 되는 날이다.북한에 있어지난 2년은 생존을 위해 대내외적으로 몸부림쳐온 기간이었다.「아사자(餓死者)발생」「붕괴는 시간문제」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도는 가운데 김정일(金正日)은 권력승계를 국내외 에서 「인정」받았으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최고권좌에 오르지 못했다.국제사회에 쌀을 구걸하는 한편 「망자(亡者)를 위한 요란한 잔치」를 벌여야 하는 김정일인 것이다.이런 가운데 북한은 전례없는 변화를 가져올 정책을 펼칠 조짐을 보이고 있 다.김일성 사망 2주기를맞아 전환기에 놓인 북한체제를 2회에 걸쳐 조망한다.
[편집자註] 지난해말 발간된 『조선중앙연감』95년판에는 김일성(金日成)이 노동당 총비서와 국가주석등을 맡는 것으로 돼있다.사망한 김일성이 「영생불멸」하면서 체제 전반을 통치하고 있는것이다.「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 다」는 구호에서 볼 수 있듯이 표면상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인다.김정일(金正日)도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96.6.3 노동신문 정론)며 정책노선의 변경이나 수정이없을 것임을 못박았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모습과 달리 북한체제 전반은 이미 분명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최근 평양에서 북한 최고위층과 만난 한인사는 북한지도층 사이에 『개방하면 체제가 붕괴할 수 있다.그러나 이제는 변화하지 않으면 자멸할 수밖에 없다 』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고 전한다.
북한당국은 우선 고사(枯死)상태에 이른 경제문제 해결에 개혁의 손을 댔다.「분조계약제」형태의 농업개혁에 이어 상업부문에 손질을 가하기 시작했고,곧이어 산업 전반에 걸친 개혁.개방조치가 뒤따를 것이라는게 최근 북한을 다녀온 관계자들 의 전언이다.주체사상의 보루라 할 주체과학원 경제학연구소에서는 개혁조치가가져올 주민들의 사상동요를 막고 개혁이 주체노선의 이탈이 아님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고심하고 있다.올들어 노동신문.중앙통신등 모두 5개의 북한언 론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각 지방도시와 산업시설을 돌아보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을 배워갔다. 대외경제 부문에서도 김정우(金正宇).이성록(李成祿)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경제엘리트들이 북한판 세일즈외교를활발히 벌이고 있다.북한에 제공될 경수로에 거는 북한의 기대도각별하다.식량 못지않게 시급한 것이 에너지이기 때문 이다.완공전까지는 발전용 중유가 공급되고 미래에는 북한산업을 책임지게 될 경수로가 들어설 신포(新浦)는 꿈의 땅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는 핵심권력층 움직임이 주목의 대상이다.북한체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당.정.군 요직의 변동은 김일성 사후 모두 20여명에 달한다.경제부문을 중심으로 당과 정무원의 일부 조직개편도 있었다.평양시 행정경제위원장을 비롯해 일부 지방 당.정조직 책임자와 부위원장급 지방 당간부들의 교체도 단행됐다.총리강성산(姜成山),부주석 김영주(金英柱),부총리 김환(金渙)등은건강문제등으로 후속인사가 임박해 있다.
사회분야의 변화는 먼저 주민들의 의식에서 나타나고 있다.김일성 사망과 지난해 대홍수는 북한주민들에게 「이대로는 안된다」는위기의식을 갖게 했다.변화에 대한 절박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젠 북한주민들도 자기가 살고 있는 체제가 상당 히 2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주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멀어져 가는 민심을 구태의연한 사상교양이나 공허한 구호만으로 붙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북한주민들의 대남관(對南觀)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지난해만 해도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은 남한이야기를 할 수도,들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한의 문제를 주제로 가벼운 토론을 할 수 있고 북한관리들의 입도 한결 가벼워졌다는 것이다.다만 대북(對北)식량지원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태도에 대해 『동포가 미국만도 못하다』고 말하는 북한주민들의 섭섭한 마음은 여전하다.
이제 북한에 있어 변화는 숙명이다.최근 북한방송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는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 구호가 단지 현재의 어려움을 호도하려는 미봉책(彌縫策)이 아니라면 김일성 사망은 북한체제에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일 수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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