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옐친 승리와 韓.러시아 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러시아국민들은 3일 실시된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보리스 옐친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줌으로써 결국 공산주의의 부활보다는 개혁의 길을 선택했다.이번 선거가 전세계,특히 한국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그동안 옐친이 추구해온 개혁과 러시아인들이 옐친을 선택한 의미를 곱씹어보아야 한다.
옐친대통령은 지난 5년간 정치적으론 자유민주주의를,경제적으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개혁을 추진해왔다.그러나 70여년간 계속됐던 공산주의를 청산하는 과정은 러시아국민에게 싫든좋든 고통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고통과 아픔,현실에 대한 불만은 지난해 12월 러시아하원의원 선거에서 공산당을 제1당으로 진출시켰다.
이러한 현실아래 러시아 1억 유권자가 그를 다시 선택한 이유는 옐친정권이 추구해온 개혁이 고통스럽지만 개혁의 중단이나 후퇴는 더욱 큰 고통을 초래하고,이러한 고통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그리고 공 산주의가 러시아국민에게 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분명히 보여준 또하나 중요한 점은 개혁이고통만을 가져온게 아니라 무시할수 없는 성과도 가져왔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러시아의 진로가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을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되돌릴수 없는 개혁과 민주화라는 역사의 전진방향으로 가고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대통령선거 이후 러시아의 대내외 정책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정통성과 안정성을 함께 확보한 옐친 제2기 정권은 대내적으로 개혁정책을 계속 밀고나갈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대외정책은 일방적인 친(親)서방정책에서 탈피해 이미 프리마코프 외무장관 취임이후 현실화된 것처럼▶안보.경제적 실리를위한 독립국가연합(CIS)국가들과의 결속강화▶유럽 안보상의 발언권 확보를 위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확대 반대▶중국과의전략적 동반자관계 구축▶미국과의 대등한 협력관계 유지정책등에 중점을 두게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러한 대외정책 기조는 한반도의 남북한 관계에도 그대로 반영돼 이미 추진돼온 북한과의 관계회복 움직임도 지속될 것으로예상된다.그러나 한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면서 대북한관계를 강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에 비친 한국은 가전제품.자동차등 소비재 수출에 급급하고 투자는 하지않는 나라로 되어있다.
또 북한 핵문제 대응과정이나 4자회담제의등에서 러시아를 소외.경시하고 있다는 인식이 외교 실무정책자들 사이에 점증하고 있음에 유의해야한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지듯 러시아인들은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선택했다. 때문에 우리는 이제 민주러시아의 새로운 탄생과 더불어한.러관계를 재점검하고 그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주변 4강의 하나며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더없이 중요한 동반자임을 다시 한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우리와 국경을 맞댄 러시아와 선린우호를 유지해야할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미래지향적 한.러관계를 위해 다음과 같은일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국제정세상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러시아의 대북한 관계개선 움직임에는 의연하게 대처하되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준을 넘 지않도록 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보수세력의 집결장인 러시아의회에 대한 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대러시아 투자를 적극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모스크바시내한국트레이드센터 건립,나홋카 공단설립등 대형 프로젝트의 조속한추진으로 러시아에서의 한국역할이 돋보였으면 한다.
김석규 외교안보연구원장 前 駐러시아 대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