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얼굴 붉힌 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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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본선 32강전>
○·구 리 9단(중국) ●·진시영 3단(한국)

제1보(1~14)=중국 바둑이 후지쓰배와 도요타 덴소배를 잇따라 휩쓸며 여름 바둑계를 장악했다. 그러나 한국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세계 패권을 놓고 한·중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9월 2일 유성에서 열린 삼성화재배 개막식은 그래서 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한·중 기사들은 칼을 숨긴 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공한증을 털어버린 중국 기사들의 자신감이 은밀하게 떠돌고 있었다.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간 바둑은 거꾸로 일본에서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건 연어가 고향을 찾아가듯 자연스러운 일일까.

예선 통과자 16명이 본선 시드 16명을 상대로 지명권을 행사하는 선수 지명식. 권위 있는 대회를 ‘이벤트’로 만든다는 비난도 받고 있지만 프로기사 김효정 2단의 진행이 재미있어 종종 폭소가 터져나왔다. 이창호 9단은 중국의 여자기사 정옌 2단의 지명을 받은 뒤 “프로기사를 배필로 맞을 생각은 없느냐”란 질문에 얼굴을 붉혔다.

“나도 평생 바둑만 했는데 여자까지…”라고 말끝을 흐린 이 9단은 김효정의 거듭된 질문에 “차츰 생각해 보겠다”고 한 발 물러서야 했다.

이날 선수 지명식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의 진시영 3단과 이영구 7단, 두 신예가 중국 바둑의 양대 축이라 할 구리 9단과 창하오 9단을 지명한 것. 이튿날 벌어진 대국에서도 당연히 집중 조명을 받았다.

14는 A로 한 번 더 밀고 뛰는 것이 최근의 유행인데 구리는 바로 뛰었다. 가만히 보니 연구된 수. 8의 축머리에 주목해야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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