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융지주사 전쟁’ 막 올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대형 지주사와 합병해 금융 산업의 지도를 바꾸겠다.”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9일 포문을 열었다. 29일로 예정된 국민은행의 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금융계 검투사’로 불리는 그가 던진 승부수는 우리·신한·하나 등 다른 금융지주사와의 합병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은행이나 증권사 등을 놓고 벌이던 은행권의 인수합병(M&A) 논의가 일순 ‘금융 공룡’ 간의 ‘진검승부’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누가 사고 누가 팔리는지 막판까지 분간할 수 없는 ‘지주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선전포고=전쟁을 하려면 명분·실탄(자금)·전략이 필요하다. 황 회장이 이날 건 명분은 ‘국가대표론’이다. 그는 “제일 크다는 국민은행이 세계 100위권에 턱걸이하는 수준”이라며 “좁은 땅에서 여럿이 다투어서는 금융산업을 키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탄은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떠안게 된 4조원가량의 자사주다. 이를 연내에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팔아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략은 ‘대등합병론’이다. 황 회장은 “갑이 을을 먹는 ‘인수(acquisition)’가 아닌 대등 ‘합병(merger)’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대한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또 대등 합병으로 회사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주주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합병 예상 시기에 대해 황 회장은 “상대방이 있는 문제라 단언할 순 없지만 희망은 내년 상반기, 늦어도 내년까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지주사와의 결합이 가장 유리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도상연습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승자는 누구?=외환위기 이후 국민은행은 리딩뱅크 자리를 뺏기지 않았다. 하지만 위태로운 1등이다. 외환은행 인수가 어려워진 사이 은행 부문은 우리·신한에 쫓기고 있다. 카드·증권 등 비은행 부문의 경쟁력도 여타 금융지주에 비해 뒤처진다. 황 회장의 ‘지주 간 합병론’은 이런 난국을 한번에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 해석된다.

국민이 지주사가 되면 경쟁 판도는 국민·우리·신한지주가 3강을 이루고 하나지주가 뒤쫓는 형태가 된다. 자산으로 보면 우리가 318조원으로 가장 앞서지만 3강 간 차이는 20조원 안팎이다. 대형 지주사 간 합병이 실현된다면 누구라도 선두로 치고나갈 수 있는 구조다.

◆은행 빅뱅 올까?=타 금융지주사들은 다소 냉소적이다.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은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황 회장이 판을 흔들어 경쟁 구도를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끌고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절 ‘토종은행론’을 내세워 한 차례 은행권을 뒤흔들었던 것과 궤를 같이한다는 얘기다.

어떤 식으로든 은행산업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데는 상당수 전문가가 동의한다. 문제는 지주 간 합병의 실현 가능성이다. 하나대투증권 한정태 애널리스트는 “은행산업이 성장하려면 추가 빅뱅이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대형 금융사 간 주도권 경쟁과 주주들 간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단시일 내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금융지주사=은행·증권·보험 등 금융사를 자회사로 둔 지주사다. 은행·신용카드·증권·자산운용 등의 원스톱 금융 서비스가 가능하고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01년 우리금융과 신한금융에 이어 2005년 하나금융도 지주사로 전환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