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해외여행 달러 펑펑 낭비-경제 진급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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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수지 적자의 새로운 주범이 관광수지라는 사실에 정부당국도대책을 찾느라 끙끙 앓고 있다.응급처방도 마땅찮을뿐 아니라 향후 전망은 더욱 우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수가 들어오는 외국인 수를 웃돌기 시작했고 올들어 5월말 현재 그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고 있다. 반면 들어오는 해외관광객들은 늘기는 커녕 최근들어 오히려 감소추세로 돌아섰다.일본인 입국자수는 5월말 현재 지난해동기 대비 6.5% 줄었고 같은 기간중 전체 외국인 입국자는 0.45% 감소했다.안팎으로 고난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 다.
일본이나 대만도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 진입을 계기로 해외여행이 증가했었다.그러나 한국처럼 적자가 수직상승하진 않았다.더구나 일본.대만은 무역수지쪽에서 내는 흑자가 엄청나기 때문에 여행수지 적자 따위는 문제되지도 않았다.
해외여행 경비 증가 자체를 무턱대고 비판할 순 없다.국제화.
개방화의 당연한 비용이기도 하다.또한 해외여행 경비중에는 쇼핑비용이 적지 않을 테고 이들 품목에 대한 수입개방이 충분히 되어 있다면 수입을 통해 국내에서 썼을 돈들이다.
따라서 무역수지 적자에 더해져야 할 돈이 무역외수지 쪽에 묻혀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봇물처럼 터지는 해외여행 홍수 양태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9억달러 이상이 쓰여지고 해외유학 경비만해도 도피성 유학이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는게 중론이다.미국.캐나다등지의학생촌에는 한국학생들의 호화판 유학이 자주 말썽 을 일으킬 정도다. 실명제를 피해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해외에 나가 쓰겠다』는 풍조도 만연되고 있다.특히 자유직업인들 가운데는 『국내에서 들어가는 아이들 과외비만으로도 캐나다나 뉴질랜드에 가서 5년정도는 즐기면서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이처럼 여행 수지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리고 있는 요인은 매우 복합적이다.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국민에게 근검절약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해외여행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국내 서비스산업의 질이 떨어지고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서비스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 비용과 가격을 낮 출수 있어야한다.』(남종현 고려대 교수) 자원배분과 산업정책 차원에서부터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제조업 일변도의 경직된 정책속에 서비스산업을 괄시해온 당연한 결과라는 지적이기도 하다.제조업에 가려 서비스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외국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력은 반도체나 자동차에만 적용되는게 아니다.레저와 호텔등관광산업에도 경쟁력은 필수불가결이다.볼거리도 신통찮고,물가는 비싸고,길은 사방에서 막히고,각종 공해에 찌든 나라에서 한국인스스로도 기회만 닿으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판인데 하물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무얼 기대하고 한국을 찾아 달러를 쓰겠는가.
한국관광 특집기사를 쓰러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구엔 조 친 뉴욕타임스 기자(재미동포)는 『미국 사람들이 싼 맛에 한국여행을 했는데 이처럼 비싸고 불친절해서야 누가 다시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자존심 상하는 말이지만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이처럼 상품 수입으로만 돈이 나가는게 아니다.
***서비스 경쟁력 最惡 식당 종업원의 친절부터 시작해 모든사회적.경제적 소프트웨어의 경쟁력 부족으로 빚어지는 달러지출이무서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것이 새로운 고민거리다.이것은 세금이나 쿼터등으로 막을 수도 없다.
이 분야의 경쟁력을 기르는 것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지금부터라도 올바른 문제 인식이 절실하다.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수출을 늘려 봐야 무역수지를 초과하는 무역외수지의 적자 폭은 갈수록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까짓 관광산업쯤이야』하는 사고방식이 이런 사태를 몰고 온 셈이다.
최종찬 재정경제원 경제정책국장은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유치보다 내국인 관광수요를 국내에서 소화하는 것이 더 시급한 정책과제』라고 강조했다.
내국인이 앞을 다퉈 짜증스런 「교통지옥.공해지옥」을 탈출해 외국으로 나가려는 판에 어느 외국인이 한국을 찾겠느냐는 지적이다. 제주도를 찾는 것보다 동남아로 가는 것이 훨씬 싸게 즐길수 있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해외여행 수지의 악화 추세는 더욱심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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