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취한 청년 저지한 '용감한 시민'의 어이없는 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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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술에 취한 행인이 시민들을 괴롭히며 난동부리는 것을 보다못해 나섰을 뿐인데 살인을 하게되다니…믿어지지 않습니다.』 만취상태에서 지나는 시민들에게 폭행을 휘두르며 행패를 부리던 20대 남자를 저지하기 위해 용감하게 나섰던 한 시민이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수원중부경찰서는 26일 김형구(金亨求.32.태권도학원장.수원시팔달구우만동 광림빌라A동202호)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金씨가 대부분의 시민이 지나쳐 버린 「거리의 폭력」에 맞선 것은 25일 오후9시.金씨는 승용차를 타고 수원시팔달구우만동 동일주유소 앞을 지나다 沈모(21.S전문대 휴학)씨가 만취상태에서 지나가는 여자들을 닥치는대로 희롱하고 돌멩이 를 던지는 것을 목격했다.
沈씨는 여자들을 희롱하다 길옆 철제 신문가판대를 집어들고 朴모(43.장안전문대 교수)씨등 남녀 일행 네명이 탄 승용차를 가로막고 트렁크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朴씨가 차에서 내려 『왜 그러느냐』며 항의하자 주먹을 휘둘러朴씨 얼굴을 때렸다.朴씨의 안경이 산산조각났다.그러나 행인들은무심히 지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차 안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金씨는 차에서 내려 沈씨에게『이러면 안됩니다』며 여러차례 자제를 호소했다.그러나 沈씨는 『너는 뭐냐』며 철제 신문가판대를 들어 金씨를 폭행하려 했다.
이 순간 金씨는 방어를 위해 본능적으로 발을 뻗어 沈씨의 가슴을 걷어찼고 쓰러진 沈씨는 뒤늦게 출동한 경찰에 의해 곧바로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급소를 맞은듯 숨지고 말았다.
『학창시절부터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었습니다.이런 성격 때문에 아내는 제발 나서지 말라고 부탁하곤 했는데….』 金씨는 『본의 아니게 살인을 저지르게 돼 어떻게 사죄받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사건담당인 이동수(李東洙.경정)수원중부경찰서 형사과장은 『용감한 시민으로 표창받아야 할 사람을 오히려 구속해야 하는 것이너무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공인 태권도 5단인 金씨는 지난 88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시범선수단으로 출전하기도 한 태권도인이다.
수원=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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