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태권도연맹은 북한 통전부의 전위 조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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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 01면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지부를 두고, 회원이 3000만 명에 이르는 국제태권도연맹(ITF·총재 장웅)의 오스트리아 빈 본부가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이하 통전부) 전위조직이었음이 드러났다. 장웅 총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다. 북측은 통전부 공작원들을 태권도 사범으로 위장해 해외 공작·정보 요원으로 보냈다. 통전부는 특히 1980년대에 ITF 사범들을 앞세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암살을 세 차례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ITF 창설한 최홍희의 아들 최중화 단독 인터뷰

이 같은 사실은 ITF의 창설자인 최홍희(72년 캐나다 망명·2002년 평양에서 사망) 전 총재의 아들 중화(54·사진)씨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최중화씨는 74년 출국했다. 그는 장웅 ITF 총재 체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별도의 ITF를 조직해 총재를 맡고 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최씨는 전향하겠다는 의사를 남측 당국에 전했다. 이명박 정부가 전향 요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8일 34년 만에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최씨는 5~6일 도쿄 나리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중앙SUNDAY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최중화씨에 따르면 통전부는 ITF 본부에 돈을 대주고 대남 공작을 지시했다. 통전부는 최홍희 전 총재로부터 수천만 달러 규모의 자금 지원을 요청받고 매년 30만 달러의 조직 운영자금과 120만 달러의 세계대회 개최 경비를 지원했다. 그 대신 통전부는 80년 이후 ITF의 태권도 사범들의 해외 파견을 직접 관장했다. 다음은 최씨와의 일문일답 요지.

-서울에 왜 가려고 하나.
“부친이 태권도를 만든 것은 민족의 얼과 슬기를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50년 세월 속에 태권도가 정치에 휘말려 잃은 게 많았다. 나도 50이 넘었으니 모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최중화씨가 1991년께 방문한 푸에르토리코에서 발차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최중화씨 제공

-최홍희씨의 자서전 『태권도와 나』를 보면 ITF와 북한이 너무 밀착돼 있다.
“북한에도 태권도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아버지가 시작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관계가 깊어졌다. 79년 5월 통전부의 최승철(당시 73세·사망)이 캐나다로 왔다. 아버지에게 북한에 살던 형님(최봉희)과의 상봉, ITF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방북을 권유했다. 80년 9월 ‘최홍희 태권도 시범단’이 평양 체육관에서 시범을 보였다.”

-ITF는 얼마나 북한과 관련됐나.
“태권도 사범 중에 북한 공작요원이 상당히 들어가 있었다. ITF는 81년 1차로 100명, 82년 1월 2차로 80명의 사범을 양성해 해외로 파견했다. 2차 때는 나와 임원섭 사범이 교육했다. 그런데 3차부터 지금까지 ITF는 사범 교육에 일절 관여하지 못했다. 모두 통전부가 담당해 공작원으로 키워 해외로 보냈다. 총재인 아버지와 나는 완전히 제쳐졌다. ITF는 관여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북측 요원이 들어가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최씨는 태권도 8단답지 않게 곱상하고 호리호리한 편이었다. 그는 “태권도는 내지르는 무술이라 근육이 뻗는 식으로 발달한다”고 말했다. 그의 주먹은 단단했지만 솥뚜껑 같지는 않았다. 최씨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 긴장한 듯했다. 영어권에서 오래 산 그는 한국말을 좀 더듬었고 기자에게 이 점을 미안해했다.

최씨에 따르면 북한은 ITF의 해외 파견 사범들을 동원해 ‘재독 한인 반전반핵연맹’(82년), ‘조국통일촉진회’(89년 캐나다), ‘조국통일 워싱턴 연합회’(94년), ‘배달민족 평화통일 촉진회’(95년) 등 친북·반한 단체를 결성하도록 조종했다.

통전부는 최홍희 전 총재를 전금철(후에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 대표, 아태 부위원장 역임)이 관리하고, 당시 사무총장을 맡은 아들 최중화씨는 최승철(최근 경질된 최승철과는 다른 사람)과 이동식 공작관이 맡게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 계획과 관련한 최씨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북한의 대남 공작 담당 최승철은 82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주오스트리아 북한 대사관저에서 최씨에게 캐나다 유대계 마피아 조직을 동원하는 암살 계획을 직접 지시했다.

이와 별도로 북측은 필리핀 골프장,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살하는 계획을 각각 세워 ITF 태권도 사범들에게 지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전부는 ITF 창설자인 최홍희 전 총재가 2002년 6월 사망한 뒤 관련 조직을 사실상 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평양에서 추모회를 빙자한 긴급총회를 개최해 농구선수 출신인 장웅 IOC 위원을 총재로 추대한 것이다. 북한은 장웅 이후에도 ITF를 계속 장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7일 카자흐스탄에서 ITF 총회를 열어 새 총재를 선출할 계획인데 현재 집행총국장을 맡은 이용선을 추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이 총국장은 90년대 초 ITF 본부에 파견돼 북한 지원 자금과 연맹 수입금으로 대남 공작을 지원하는 통전부의 해외 공작원”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최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 모의 사건과 최근의 친북 활동에 대해 추가 조사를 받은 뒤 간첩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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