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뉴요커의 영적 탐험 ‘성경 따라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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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자칭 ‘전형적인 21세기 뉴요커’인 저자 A J 제이콥스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냈다.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수염을 기른 저자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세종서적 제공]

미친 척하고 성경말씀대로 살아본 1년
A J 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세종서적
각 권 320·296쪽, 각 권 1만2000원

 일요일 한낮, 뉴욕의 거리를 걷고 있는 당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가 있다. 범상치 않다. 덥수룩한 수염에 지팡이를 들고 흰색 옷을 두르고 있다. 그 남자가 당신에게 다가와 작은 돌을 슬쩍 던지고 “어이쿠, 죄송합니다”란 말만 남긴 채 황급히 사라졌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하지만 용서해주시길. 이 남자는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라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것뿐이니까.

성경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21세기 뉴요커가 ‘미친 척하고 성경말씀 따라하기’를 1년 동안 실행에 옮겼다. 패션잡지 ‘에스콰이어’ 편집자이자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의 저자이기도 한 A.J.제이콥스가 그 주인공이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만 지킨 것이 아니다. “성경적 삶, 그 궁극적인 버전을 살아보고 싶다”며 성경을 철저히 파헤치고는 700여 개의 계율을 정리했다. 그 중에는 ‘두 가지 재료로 만든 옷을 입지 말라’ ‘초하루에 나팔을 불어라’ 등 다소 황당한 것들도 많지만 고집스럽게 실행해 나간다.

왜 이런 황당한 계획을 세웠을까. 종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저자가 성경의 영향력이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막강해지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1년에 걸친 영적 탐험의 기록은 말 그대로 ‘눈물겨운 고군분투기’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간단해 보이는 계율조차 쉽지 않다. 한 식당에서 우연히 부인의 동창을 만났다. 부인이 친구에게 “조만간 다함께 보자”고 하자 저자는 그 자리에서 말한다. “당신 친구 부부는 좋은 사람들 같아. 하지만 우리한테 당장 새롭게 사람을 사귈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냥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화가 난 부인에게 하루종일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던 건 물론이다. 저자는 성경 말씀에 따르기 위해 꾸준히 ‘사고’를 친다. 집 안에 초막을 짓고, 비둘기 알을 만지며, 정결함을 지키기 위해 간이 의자를 들고 다닌다. 유쾌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종교에 무지한 이들도 성경 계율의 유래와 다양한 해석을 접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세 이야기. 성경에는 모세가 지팡이를 치켜들면 바닷물이 말리면서 뒤로 물러난다고 쓰여 있지만, 성경에 없는 구전의 내용은 이렇다. “모세가 지팡이를 치켜들었을 때 바다는 갈라지지 않았다. 이집트인들이 가까이 몰려들고 있는데 바다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 한 사람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그의 콧구멍을 막으려는 순간 바닷물이 드디어 갈라졌다. 기적이란 그 안에 뛰어들었을 때 일어나기도 한다.”

영적 탐험이 끝나고 저자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기도를 하면서 위로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얼마나 흠 많은 사람인지 절실히 깨닫게 될 줄은 몰랐다. 성경에서 그렇게 이상한 내용을 많이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성경에서 안식을 찾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부작용 아닌 부작용도 있다. 너무 자주 범사에 감사하게 됐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는 빨리 와준 것에 감사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케이블이 끊어져 나를 지하 바닥에 메다꽂지 않는 것에 감사한다. 이전에는 이렇게 사소한 것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나의 매일 매일을 무탈하게 만들어주는 수천 가지의 사소한 일들. 감사를 드리는 대상이 누군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감사에 중독되어 어쩔 수가 없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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