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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세련된 인도주의 정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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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전 당시 미군실종자에 관한 미국방부 내부자료가 미국 일부언론에 공개되었다.한국전쟁시 실종된 미군 가운데 북한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 보고서였다.
미국방부는 이 문건이 최종 보고서가 아니라며 내용확인을 유보했지만 논의가 쉽사리 종결될 것 같지는 않다.지난 5월 북.미(北美)간에 유해발굴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실무협상도 평양에서 개최되어 한달뒤면 북한땅에서 미국전문가들의 유해발굴작업이시작된다.
미군유해 송환논의에 전기(轉機)가 마련되면서 북한내 미군생존자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죽은 자」발굴에도 발휘되는 미국의 인도주의가 확인정보가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려진북한내 「생존자」문제 논의에 미치지 않은 데 대 한 미국내 반발은 대단하다.국방부 내부문건이 외부에 소개된 배경도 이같은 정서와 무관치 않다.
북한내 미군생존자문제는 반세기에 걸쳐 실종자 가족들의 부단한사실확인 촉구와 지역구의원들에 대한 조사요청,언론을 상대로 한호소 등이 축적된 결과 이제는 미행정부가 실질적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우리 정부가 대북(對北)관계에 있어 거론하는 인도적 문제란 시베리아 탈출 벌목공,북한내 억류자,이산가족문제와 함께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를 포괄한다.한편 정부는 최근 인도적 지원임을 강조하며 대북식량지원을 결정했지만 북한의 어려운 상황은 예상치않은 인도적 범주의 문제를 야기해 정부의 골칫거리로 등장할 가능성이 상존한다.이제는 인도적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남북관계는 군사.정치적 의미가 압도하고 있어 인도적 조치를 취하면서도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기대 못하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그러나 남북간에 정상적 관계를 도모하는데 있어 더 없이 도움되는 분야가 인도적 지원이기도 하다.다만 정부가 주도하는 인도적 지원,언제라도 정치논리에 의해 뒤집어질 수 있는 인도적 지원이라면 대북정책과 관련해 국민들의 혼돈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불편한 입장을 자초하기 보다 비정부기구.민간단체.억류자 가족 등이 앞장서 정부와 국회.언론뿐 아니라 국제기구 및 단체들을 대상으로 문제해결을 부단히 촉구하고 정부는 이에 대해 차분히 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세련된인도주의 정책이 될 수 있다.어렵게 결정한 대북한 인도적 지원이 순조롭게 진척되려면 정부의 간여를 가급적 줄이면서 향후 닥칠 다양한 상황에 모범을 삼으려는 진지함을 보여야 한다.
길정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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