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북한 '다름'부터 이해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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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주한(駐韓)미군 사령관 게리 럭 장군은 북한정권이 붕괴할 것이며 문제는 그것이 언제가 될 것인가 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최근 귀순한 북한 공군대위 역시 북한이 전쟁을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여겨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한다.이런 시 점에서 한국과 미국 양국은 군사력을 강화하는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나 이와 동시에 통일에 대한 준비 역시 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한국은 통독(統獨)이전의 옛서독이 범한 실수,즉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의 통일논의를 하지 않았고 반세기에 걸친 분단상황이 초래한 양측의 사회.문화적 차이점을 무시해버렸다는 것을 되풀이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최근 몇년간 나는 한국에서 여러명의 북한귀순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그들은 향후 통일한국의 사회문제를 점쳐볼 수 있는 유일한 모델이다.그런데 이들중 심지어 몇십년을 한국에서 살아온 귀순자들도 한국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 했다.민족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약 5백60명 귀순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 실직상태라고 한다.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공산정권 아래서 자라온 그들이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것이 사실 힘들었을 것이다.
많은 귀순자들이 북에 두고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하고있으며,결혼하고 싶어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다.귀순자들은 한국정부가 그들을 통일정책 수립과정이나 통일후 사회적 자원과 관련한 대화에 동참시켜 주지 않음에 못마땅해 하 고 있다.
거의 모든 한국민은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지상목표가 통일이란 점에 동의한다.몇몇 정치인들과 일반시민이 향후 발생할문제점에 대해 공공연히 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한국정부가 토지 및 기타 부(富)와 관련한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한국에 거주할 북한이주민에게 어떤 종류의 일자리가 주어질 것인지,또 북한에서의 교육 및 직업훈련이 과연 한국에서도 인정될수 있는지 등이 문제다.비록 김영삼(金泳三)정부가 몇몇 관련정부기관에 통일의 사회적 측면을 분 석할 것을 요청하기는 했지만기관간 공조체제가 없고 그 분석결과 역시 대중 및 정부기관의 대화에 이용되는 것같지 않다.
사실 한국민이 북한주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그들이 어떠하리라고 상상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문제는여기에서 시작된다.한국민은 그들이 다르지만 같은 한민족이라고 생각한다.정치인들은 한국내의 오래된 지역갈등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동일하다고 말한다.한국인에게는 미국에서 흔히 말하는 「멜팅 팟(melting pot)」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다름」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다.
한국민은 동질성의 신화를 넘어서는 통일에 대한 실질적 논의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한국민을 한 나라로 이끄는 통일은 분단된 상태를 강조하기보다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수립이 돼 야 할 것이다.근년에 들어 한국민이 북한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이제는 한국방송에서 북한뉴스 청취가 가능하며 도덕교과서는 이러한 이질성을 주제로 교과내용이 대폭 개편됐다. 한국정부는 통일원이 지정한 북한의 잡지.신문.영화 및 모든 종류의 「비밀대중문화매체」에 한국민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있도록 도와줘야 한다.정책입안자들은 북한귀순자들이 어떻게 한국생활에 적응하는지,또 한국사람들은 그들을 어떻게 반 기는지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만약 한국민이 북한주민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지 않고 언젠가 함께 살아야 할 복수사회로 향한 길을 지금 닦아놓지 않는다면 북한주민들이 한국을 더욱 부강한 국가로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한국민의 소망은 실현가능성이 적은 오히려 사회.경제적 혼란만 야기할 부질없는 소망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로이 리처드 그린커 美조지워싱턴大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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