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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불편한 파티로의 초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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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에서 인권운동이 전국을 휩쓸던 1967년 한 편의 문제작이 상영되었다. 시드니 포이티어와 캐서린 호튼 주연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 마틴 루서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연설이 미국 전역에 반전운동과 인권운동의 물결을 일으켰던 시대,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시민권을 요구하는 흑인 시위대에 “동물원에나 가라”는 백인들의 저주가 한데 엉켰던 시대에,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의 사랑 스토리가 얼마나 충격적인 파문을 던졌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교양층에 속하는 양가의 부모들은 이성과 감성 사이에 끼여 마음을 작정하지 못하고, 사회적 금기의 벽을 깰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무한히 고뇌한다. 이성적으론 인종의 차이를 넘는 사랑이 지극히 정당하다고 믿어왔지만, 자신들에게 닥쳐온 그 돌발적 사태를 가슴속 깊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게 문제다. 감성의 깊은 골짜기에 쳐진 관습의 장벽을 거둬내야 하는 것이다. 그 영화는 결국 이성이 지휘권을 발동해 감성적 저항을 제압하는 것으로 끝난다. 해피 엔딩이다.

미국 대선에서도 해피 엔딩이 가능할까? 감성의 반란이 이성의 명령에 무릎을 꿇을까? 킹 목사가 ‘미국의 꿈’을 역설하기 2년 전에 태어났고, 그가 암살되던 즈음에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혼혈인의 정체성과 고뇌가 정치신념의 동력이 된 47세의 흑인을 자존심 드높은 앵글로색슨의 통치자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금기의 벽을 깨는 데 익숙한 민주당도 상황이 여기까지 진전되었다는 점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당을 이끄는 거물급 정치인들의 솜씨는 역시 유려했다. 미국 백인들을 그 당혹감 속으로 밀어넣어 인종에 대한 그들의 진정성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1863년 노예해방 이래 여전히 수면 아래 작동해온 인종정치를 이제는 끝장낼 용의가 있는지, 그리고 흑인 통치를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2008년 미국의 유권자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인종차별을 금지한 시민권법이 통과된 1964년 이래 미국에서 인종문제가 상당히 개선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여성의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보다 더 강력하고 두꺼운 차단막이 사회 도처에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화·예술·스포츠 분야를 제외하고 흑인과 유색인종이 상층부로 올라갈 통로는 매우 협소하고, 권력 엘리트가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구슬픈 단조의 노래인 영가(靈歌)의 가락처럼 흑인들은 지난 세기를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기에 오바마의 대선후보 등극을 기적처럼 바라보고, ‘부서진 미국의 꿈’을 수선하려는 그의 때늦은 등장을 감격의 눈물로 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바마는 열광하는 유권자에게 ‘미국의 약속’을 환기시켰고, ‘보수의 독단’을 ‘진보의 양심’으로 교체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는 보수의 세계관을 하나씩 뒤집고 그곳에 민주당의 강령을 꽂았다. 가족을 공동체로, 부자를 빈자로, 방치를 보호로, ‘전쟁과 무력’을 ‘평화와 교섭’으로 각각 대체했다. 미국의 꿈은 억만장자와 거대기업의 숫자가 아니라 식당 웨이트리스의 은행 잔고, 직장을 잃을 불안에서의 해방, 자동차와 집을 팔아치우지 않아도 될 작은 여유에서 살아난다는 것을 역설했다. 최고의 부와 최강의 군사력으로 못할 짓을 해왔던 미국을 ‘존경받는 제국’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오바마의 외침에 지지자들은 눈물과 깃발로 화답했다.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크루그맨이 최근의 저서에서 강조했듯, 이 ‘진보의 양심’은 미국과 세계의 질서를 바꿔놓을 것임이 분명하다.

‘제국의 변모’를 강력히 원하는 백인 유권자들은 냉정을 되찾은 뒤 다시 물을 것이다. 흑인 통치를 즐겁게 받을 마음이 있는지, ‘블랙맨이 접수한 화이트 하우스’를 상상할 수 있는지를. 그들은 영화의 주인공 캐서린 호튼의 부모가 되어 인종 관념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을 성찰해야 할 불편한 시간을 맞고 있다. 불편한 파티로 초대된 것이다. 미국의 질서를 구성하는 가장 원초적인 요소, 자본주의의 먹이사슬이 배태한 분업의 위계와 생물학적 편견이 겹쳐 단단하게 굳어진 인종사회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미국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인가.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그것은 21세기 정치의 최대 드라마이자 인류 공동체의 진화 방향을 바꾸는 문명사적 대사건이 될 것이다.

송호근 서울대·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