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위기에 빠진 박지원씨 "내 눈 지켜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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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다도 (소중한) 하나 남은 제 오른쪽 눈을 지키고 싶습니다."

현대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 등으로 구속기소된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재판부에 "한 쪽 눈을 구할 수 있도록 구속집행정지를 허가해 달라"고 20여분간 호소했다.

朴씨는 이날 흰 가운.흰 운동화 차림에 양쪽 눈에 안대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왔다. 그는 재판장인 이주흥(李宙興)부장판사가 "진료기록상 안압이 정상치인 것 같다"며 눈 상태를 이유로 한 구속집행정지 신청에 의문을 제기하자 직접 해명하고 나섰다.

朴씨는 "오른쪽 눈은 정상안압에서도 녹내장이 진행되는 상태"라고 해명했다. 朴씨는 1, 2월 세차례에 걸쳐 오른쪽 눈 레이저 수술을 받은 데 이어 지난 22일 또 수술을 받았다. 현재 구치소 측의 허가로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이다. 朴씨가 이처럼 구속집행정지 허가를 받으려는 것은 구치소 측 자체 판단에 의한 입원치료보다 구속집행정지를 받을 경우 더 오랫동안 입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안압을 낮추기 위해 아침.점심.저녁으로 10여개의 약을 먹는데, 특히 다이아막스라는 약은 결석이 생기고 온몸이 뒤틀리는 부작용이 심하다. 약을 먹으면 정신이 혼미해 감방에 하루 종일 누워있는다"며 투병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한번 더 레이저 수술을 받으면 다음에는 집도(執刀)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30년 전 녹내장으로 실명해 의안(義眼)인 왼쪽 눈에 이어 오른쪽 눈마저 실명하게 된다"며 "재판장님이 눈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朴씨는 의안 역시 끝 부분에 염증이 생겨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朴씨는 "밥을 나눠주는 모범수가 늘어놓은 약을 보고 '식사를 안 하면 죽는다'면서 밥을 제대로 못 먹는 나를 위해 빵을 사다주었을 때 혼자서 많이 울었다"며 울먹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구치소에 가면 많은 사람이 없던 병도 생긴다. 구속집행정지 허가 여부는 신중히 검토해 보겠다"고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음 재판은 다음달 17일 열린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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