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공격적인 태권도로 무술의 본능을 깨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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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24면

지난 21일 열린 베이징 올림픽 남자 68㎏급 16강전에서 한국의 손태진이 네덜란드의 데니스 베커스를 호쾌한 뒤돌려차기로 공격하고 있다. 이런 고급 기술은 기량차가 크지 않은 상대를 만나면 나오기 어렵다.

-태권도가 재미없다는 의견이 많다. 선수들이 제자리에서 뛰기만 한다고 해서 “태권도가 육상이냐”는 농담도 나왔다.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는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수준 높은 선수들이 서로 약점을 감추고 상대 허점을 공격하기 위해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거다. 재미없다는 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왜 재미없다고 느꼈을까. 득점이 많이 나지 않고, 선수들의 공격 동작이 적었다. 선수들의 실력 차가 적어서 생긴 일이다. 실력 차가 크면 내려찍기나 날아차기 같은 큰 공격이 나오지만 팽팽하면 작은 공격으로 결승점이 나온다. 한데 ‘팽팽한 대치’는 선수들 사정이다. 관중은 선수들이 그저 제자리에서 겅중겅중 뛴다고 봤을 수 있다.”

태권도 ‘대부’ 이승국 한체대 총장 긴급 제언

-하지만 태권도가 전문가들만을 위한 게 아니지 않은가.
“물론이다. 그러나 경기 규칙을 모르고 관전하면 당연히 재미없다. 언제 점수가 나고, 누가 이긴 건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흥미를 느끼겠는가. 그런데 규칙을 모르는 건 관중이 아니라 우리 태권도의 책임이다. 홍보를 활발히 하고 규칙에 대한 이해를 늘렸다면 경기장에 모인 관중이나 중계방송 시청자들이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유도의 최민호 선수에게 그토록 열광한 까닭은 관중과 시청자가 한판의 의미뿐 아니라 그 과정과 미학까지 숙지했다는 뜻이다. 이런 점은 태권도가 배워야 한다. 우리 태권도가 기본적인 홍보조차 외면한 채 안이하게 흘러가는 면이 있다. 솔직히 지금 태권도 홍보란 게 뭐 있나. 태권도장 홍보는 있어도 태권도 기술 홍보는 전무하다시피 하지 않은가.”

-태권도 경기 규칙을 대폭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태권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간단한 규칙 몇 가지만 개정해도 무술로서의 본능을 일깨워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정권이나 손날공격에 의한 득점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면 공격과 수비가 더 다채로워진다.

그럼으로써 다득점과 공격적인 경기를 유도할 수 있다. 발차기 공격도 지금의 규칙으로는 너무 득점하기 어렵다. 강한 발차기 공격을 해도 팔에 맞으면 공격에 실패했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막기 동작으로 수비한 게 아니고, 공격에 의해 타격이 가해졌다면 점수를 인정해야 옳다. 치고받았다면 공격을 먼저 시도한 선수에게 유리하게 판정해야 한다. 공격하면 반드시 보상을 얻을 수 있게 해야 공격적인 태권도가 가능하다.”

이승국 한국체육대 총장

-전자호구와 비디오판독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됐다.
“전자호구는 아직 기술적으로 완전하지 않다. 전면적으로 도입해 전자호구만으로 득실점을 계산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예를 들어 공격과 수비의 과정 없이 우연히 접촉이 이뤄져도 전자호구가 작동해 점수가 올라가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므로 기술보완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보조 장비로 사용하는 것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심판들은 전자호구의 반응을 통해 자신들의 판정을 보다 정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디오 판독 제도는 미룰 이유가 없다. 당장에라도 도입해야 한다. 이건 세계적인 추세가 아닌가. 심판의 권위를 최우선시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심판의 권위는 정당하게 노력한 선수의 권리에 우선할 수 없다. 틀린 판정에 대해 일사부재리가 될 말인가.”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데.
“‘종주국 집착증’을 버려야 한다. 종주국이라고 해서 모든 경기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태권도는 세계 보편의 스포츠다. 어느 나라에서든 챔피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는 게 태권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대신 한국은 종주국답게 태권도의 정신적인 가치를 선양하고 확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쿠바 선수가 심판을 폭행한 사건은 유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은 태권도의 정신적인 가치 측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태권도는 무술인 동시에 예절이고, 정신적인 학문이다. 지도자는 스승이고 선수는 제자다. 그런데 일부 국가에서 지도자는 그냥 코치고, 선수는 운동하는 기계다. 예절이나 철학은 없이 스코어로 모든 걸 말한다면 그것은 태권도가 아니다.”

-문대성 동아대 교수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태권도인으로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견하고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자괴감과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다. 문 교수가 IOC 위원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 태권도인들이 얼마나 기여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베이징 올림픽 준비와 참여를 위해 일하는 과정에서 솔직히 한국 태권도는 문대성 위원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바가 없다. 문 교수가 개인적으로 노력하고, 문 교수가 가진 국제적인 이미지가 매우 훌륭해서 얻게 된 최선의 결과였다. 한국 태권도계가 이제부터라도 문 교수가 맡은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철저히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한국 태권도가 잘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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