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범의 행복 산부인과] 고등학생 딸 데리고 온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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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아이 자궁경부암 검사 좀 해 주세요.”

고등학생 딸을 데려와 느닷없이 이런 요구를 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자궁경부암 백신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등장한 새로운 풍속이다. 물론 자궁경부암 백신과 자궁경부암 검사를 착각한 것이다. 자궁경부암 백신을 15~17세에 접종하는 것이 좋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자 헷갈렸나 보다. 자궁경부암 검사는 세포를 떼내고, 자궁경부를 확대 촬영하는 등 사춘기 소녀가 겪기에는 부담스럽다. 성 경험을 가진 이후에 하는 검사라고 말하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어쨌든 자궁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많이 높아진 것 같아 매우 반갑고 다행스럽다. 하지만 아직도 자궁에 대한 담론을 수면 위로 꺼내는 것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소녀들의 산부인과’를 내건 병원도 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엄마도 자신의 ‘속’을 내보이는 산부인과 진료는 여전히 꺼린다. 그러다 보니 자궁경부암을 줄일 묘책이 없다. 자궁경부암 발생은 현재 주춤한 상태지만 그래도 매일 12명의 자궁경부암 환자가 발견되고, 하루에 세 명꼴로 사망한다.

자궁경부암은 성관계로도 전파될 수 있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의 감염이 중요한 발생 원인 중 하나다. 남성은 질환이 발생하지 않고, 바이러스만 매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자궁경부암을 극복하기 위한 첫째 수칙은 남녀 모두 건전한 성관계를 갖는 것이다.

둘째,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를 아는 것이다. 인유두종 바이러스 검사는 간단하다. 브러시로 점막 분비물을 채취해 분자생물학적 방법으로 바이러스의 유무를 가려낸다.

바이러스가 있다고 해도 미리 겁 먹을 필요는 없다. 감염자의 90% 이상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러스가 저절로 사라진다. 10%에서 감염이 지속되지만 이 중에서도 염증을 일으키고 암으로 진행되는 사람은 일부다.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어도 추적 관찰할 일이지 암에 걸린 것처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셋째, 자궁경부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궁경부암은 다른 어떤 암보다도 조기 진단법이 확립돼 있다. 암이 겉으로 보여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매년 정기검진을 받기만 해도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

넷째, 증상을 항상 관찰하는 것이다. 갑자기 월경량이 늘지 않았는지, 비정상적인 질 출혈이 있지는 않은지, 분비물 상태는 어떤지 등을 확인하고, 조금만 의심이 가도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야 한다.

자궁은 여성의 ‘제2의 심장’이다.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자궁이 몸속을 돌아다니다 다른 장기와 부닥쳐 병을 일으킨다’고 했다. 여성의 많은 질환이 자궁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성은 바로 ‘자궁이 웃는 여성’일 것이다.

강순범 서울대 의대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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