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 간 신뢰 수준 아주 높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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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알렉산더 버시바우(사진) 주한 미 대사가 다음달 중순 워싱턴으로 돌아간다. 주거지만 옮기는 게 아니라 신분도 민간인으로 바뀐다. 미국 외교관 직책 가운데 가장 요직이요 명예랄 수 있는 주러시아 대사를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의 외교관 생활 32년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2005년 10월 부임한 한국은 그의 세 번째 대사 근무처이자 마지막 임지가 됐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그가 28일 전통 한옥 양식의 대사관저에서 오찬을 곁들인 마지막 기자간담회를 했다. 재임 시절을 회고하며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는 대사의 목소리에는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든 곳을 떠나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재임 중 한·미 관계를 돌아보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과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북한 핵 문제 진전, 비자면제 프로그램 등에서 성과를 거뒀다. 쇠고기 문제 등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방위 동맹에서 중요한 결정을 이끌어냈지만 양국 관계는 오르락내리락(up and down)했다. 하지만 3년 전과 비교하면 양국 관계가 발전했다는 확신을 갖고 돌아간다. 지금은 정상 간 신뢰 수준이 아주 높아졌다.”

-아프가니스탄 재건지원에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하길 희망하나.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테러리스트의 도피처가 되지 않도록 민주화와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 몇 달 전부터 한국과 이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데 한국의 역할은 비군사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인질 사태 등으로 한국이 군사 지원에 민감하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부임 초기 북한 인권 문제를 자주 언급해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그런 말을 한 건 처참한 상황에 직면한 북한 주민을 걱정해서다. 북한이 진정 국제사회에 나오기 위해서는 이 문제도 금기시하지 말고 얘기해야 한다. 부임 초엔 위조지폐, 마약 거래 등 북한의 불법행위도 비판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그런 말들을 했는데 오히려 내 자신이 이슈가 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재임 중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가장 어렵고 복잡했다. ”

-가장 난감했던 기억은.

“쇠고기 문제가 터졌을 때 내 발언이 ‘한국인은 과학을 더 배워야 한다’고 소개됐다. 내 말 자체가 오해 소지를 안고 있긴 했지만 나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

-드럼 연주 실력이 화제를 모았는데.

“한국 친구들과 서울 주재 외국 외교관 등이 나를 위한 환송회를 마련했는데 이 자리에서 그들과 다섯 곡을 연주하는 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한국 근무 동안 오세훈 서울시장, 고교생 밴드 등 많은 사람과 함께 연주했다. 이제 워싱턴으로 가면 더 이상 ‘록 스타’ 대접을 못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쉽다.”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돌아가나.

“한국인은 포부가 원대하고 동기 부여가 강해 다들 열심히 일한다. 또 마음이 따뜻하고 우정이 깊다. 아내와 함께 남대문시장이나 광장시장에 가 구경하고 쇼핑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떠나면 서울이 그리울 것이다. ”

-퇴임 후 계획은.

“세 차례 대사를 하느라 11년 만에 워싱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당장 정착기간이 필요하다. 이제 내 손으로 저녁도 만들고 운전도 해야 한다. 아직 무엇을 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싱크탱크와도 얘기 중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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