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주먹구구 증시' 반나절 사망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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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증시사상 초유의 오전장 중단사태를 몰고왔던 증권전산망 장애사고의 전말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한편의 코미디를 보고 있는 듯한느낌을 준다.국내 금융계를 혼란에 빠뜨린 엄청난 파장에 비춰볼때 사고 원인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기 때문이다 .
사고의 발단은 증시개장에 앞서 담당직원이 전날 종가자료 대신엉뚱하게 이틀 전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바람에 자료입력착오에 따라 전산시스템이「먹통」이 돼버린 데서 비롯됐다.
서울시 공무원들의 민방공 사이렌 미발령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 전산사고 역시 인재(人災)로 판명돼 첨단 증시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자들도 『증시 완전 개방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입을 앞두고 있는 한국에서 이렇게 「원시적인」 사고가 나는 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젓는 모습이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그동안 증권전산망의 관리가 엉망이었다는 지적도 빗발치고 있다.
90년 이후 전산망 장애사고만도 51차례나 되는데다 최근 들어서는 정전이나 주문폭주등 충분히 사전대비가 가능한 원인에 의해 전산망 가동이 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전산망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증권전산의 임원진이 전산 전문인력이라기보다는 군이나 거래소 출신 등 낙하산인사가 많아 전문성 부족에 따라 사고발생이 예고돼 있었다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증권전산망의 관리책임을 지고 있는 증권거래소도 책임의 화살을면하기 어렵다.국가경제의 중대한 「혈맥」이라 할 수 있는 증시를 운영하면서도 비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상황실조차 마련되지않은데다 사고발생 후 27시간이 지나도록 사고 원인을 통보조차 받지못할 정도로 자회사인 증권전산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무려 5백70억원을 투자해 오는 10월부터 「시스템 2000」이라는 새로운 전산망이 가동되지만 시장경제의 첨병으로서 사명감과 사고예방을 위한 인식변화 없이는 이같은 사고는 또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증권가의 한결같은 지적이 다.
홍병기 증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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