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능화 어디까지 … 11가지 조치 중 8개 완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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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지원국 해제를 둘러싼 북·미의 갈등은 핵 관련 시설 검증에 대한 입장 차에서 비롯된다. 북·미는 검증에 들어가기 전 구체적 방법과 대상을 적시하는 검증이행 계획서(프로토콜) 작성을 놓고 그간 샅바 싸움을 벌여 왔다.

북한은 현 단계의 검증 대상은 영변 핵시설에만 국한된다는 입장이 완고하다. 그러나 미국은 영변 원자로와 주변 시설뿐 아니라 핵 실험장 등 핵 관련 시설은 모두 예외 없이 검증해야 한다는 원칙을 주장해 왔다. 우라늄 농축과 핵확산 활동도 넓은 의미에서 검증의 대상이 돼야 하며 이를 문서로 보증해야 한다는 게 미 측의 입장이었다.

고도의 검증 노하우를 갖춘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을 검증단에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은 거부감이 강하다. 핵시설에서 시료 채취 등을 하는 것에도 북한은 ‘수용 불가’였다. 북한은 이날 성명에서 “가택수색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미국의 검증 요구를 강력 비판했다. 북한의 속내는 북핵 폐기 과정을 잘게 쪼개 해당 단계마다 최대한의 보상을 얻으면서 핵시설 검증은 최종 단계에서 담판 지으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맞서 “지금 분명하고도 확실한 북핵 검증 체제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대가를 줄 수 없다”는 미국 입장이 충돌하면서 이견이 발생해 왔다.

◇폐연료봉은 60% 인출= 지난해 10월 6자회담 10·3 합의에 따라 북한은 영변 5㎿ 실험용 원자로,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 핵연료봉 제조 공장 등 영변 소재 핵시설에 대한 11가지의 불능화 조치에 착수했었다. 이 중 8가지 조치가 완료됐고 ^원자로 내 ‘사용 후 연료봉(폐연료봉)’ 인출 ^미사용 연료봉 처리 ^원자로 제어봉 구동장치 제거 등의 세 가지는 진행 중이거나 아직 시작되지 않은 단계다. 폐연료봉 인출은 북한이 6자회담 5개국의 대북 에너지 지원이 지연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올 초 인출 속도를 늦추며 현재 8000여 개 중 약 60%인 4800여 개의 연료봉만이 인출됐다. 미사용 연료봉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는 6자회담 당사국 간 실무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제어봉 구동장치 제거는 폐연료봉 인출이 종료돼야 가능하다.

북한이 26일 거론한 ‘원상복구’ 조치가 당장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폐연료봉 인출은 중단됐어도 원자로를 다시 가동하기엔 시설 재정비와 냉각탑 복구와 같은 실무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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