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우리시대의 목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금은 「인기없는 직업」「사라져가는 직업」 가운데 하나로 꼽힐만큼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만 목조(木造)가 건축.공예의 주축이었던 시대의 목수는 무시하지 못할 기능공이자 예술인이었다.고려(高麗)시대까지만 해도 나무를 마름질해서 집을 짓는 대목(大木)과 가구나 문짝 따위를 짜는 소목(小木)을 총칭해 목업(木業)이라 부르던 것을 목수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초기부터였다. 조선조 중기에 이르러 다시 목장(木匠)으로 바뀌는데 명칭이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궁궐과 같은 큰 건물을 짓거나 고칠 때는 목수들에게도 큰 벼슬을 내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세종(世宗)때인 1447년 숭례문(崇禮門.지금의 남대문)을 수리하면서 총책임자에게 정5품을,좌우의 목수들에게 종7품의 직위를 주었던 것이 좋은 예다.
예술가를 융숭하게 대접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천시하고 멸시하는 나라도 있다는 점은 예나 이제나 다를 바 없다.예술가를 우대하는 나라의 예술이 앞서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신라(新羅)선덕(善德)여왕때 역사상 최대 목탑(木塔)인 황 룡사(皇龍寺)9층탑을 지으면서 아비지(阿非知)라는 백제(百濟)의 목수를 초빙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당시 목공예에 있어 신라가 백제에크게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 자랑하는 호류사(法隆 寺)가 백제의 목수들이 건너가 건립한 것이고 보면 백제의 목공예.건축기술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황룡사는 후에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돼 터만 남아 있거니와규모로는 못미치지만 현존의 국내 최대가 될 목탑이 충북 진천 보탑사(寶塔寺)에 세워져 다음달 9일 준공되리라 한다.고건축의대가며 흔히 「큰 목수」란 별명으로 불리는 문 화재 전문위원 신영훈(申榮勳)씨의 필생의 역작이다.
발음이 똑같은 「목수(木壽)」라는 그의 아호도 재미있고,고건축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남대문에서 석굴암에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문화재가 그의 손길을 거쳐 보수(補修)됐을만큼 소중한 존재다.최근엔 『절(寺)로 가는 마 음』이란 두권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현대화.세계화도 좋지만 죽어버린 옛문화를 되살리는 「우리 시대의 목수」의 역할이 새삼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