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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핸드볼 ‘우리 생애 최고의 1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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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경기후 관중에게 인사하는 한국 여자 핸드볼 선수들. [베이징=올림픽 사진공동취재단]

“여러분, 울지 말고 환한 얼굴로 박수 쳐 주세요.”

방송 중계를 하던 임오경(37·서울시청 감독) 해설위원은 여자 핸드볼의 동메달이 확정되자 이렇게 말하면서 울먹였다. 보는 이들도 함께 울었다. 하지만 경기 종료 버저가 울렸을 때 선수들은 활짝 웃고 있었다.

한국이 23일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핸드볼 3~4위전에서 헝가리를 33-28로 이기고 동메달을 땄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땄던 한국 여자 핸드볼의 첫 동메달이다.

이틀 전 준결승전에서 한국은 노르웨이를 상대로 종료 직전 오심의 여지가 있는 통한의 버저비터를 내주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날은 종료 버저가 울렸을 때 선수단 전원이 벤치에서 뛰어나와 서로 얼싸안으며 환하게 웃었다. 임 해설위원은 이 순간 “다음 올림픽에서는 오심에도 이길 수 있게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춰서…”라고 말하다가 눈물에,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기둥은 ‘아줌마 선수들’이었다. 동메달을 확정 짓고 마음껏 웃음을 보였던 베테랑들도 경기장을 빠져 나오면서는 감정이 북받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경기 종료를 1분 앞두고 마지막으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기 때문이다. 종료 1분 전이었다. 임영철 여자 핸드볼대표팀 감독은 33-28로 크게 앞선 상태에서 작전타임을 불렀다. 이미 승부가 결정 난 경기에서 이기고 있는 팀이 타임아웃을 요청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다. 그러나 임 감독은 노장들을 배려하기 위해 결례를 감행했다.

타임아웃 이후 한국 선수는 골키퍼 오영란(36·벽산건설)을 비롯해 오성옥(36·히포방크), 홍정호(34·오므론), 문필희(26·벽산건설), 허순영(33·오르후스), 박정희(33·벽산건설), 안정화(27·대구시청)로 바뀌었다. 대부분이 이번 올림픽이 사실상 생애 마지막 무대인 노장들로, 이들은 감독의 배려로 ‘올림픽 은퇴식’을 치른 셈이었다.

23일 동메달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물리치면서 ‘우생순’을 마무리한 최고참 오성옥(右)과 오영란이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오성옥은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전을 마치고 탈진해 링거까지 맞았다. 당시 그는 전반 초반부터 모든 에너지를 쏟아 뛰었지만 마지막 ‘한 방’에 무너졌고, 경기가 끝난 후 한동안 코트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임 감독은 오성옥에게 “올림픽에서 금(92 바르셀로나), 은메달(2004 아테네, 1996 애틀랜타)을 다 따보고 동메달만 못 따지 않았나. 올림픽 금, 은, 동메달을 모두 딴 첫 구기 종목 선수가 돼 보라”고 독려했다. 작은 배려였던 이 말이 오성옥의 마음을 울렸다.

마지막 경기에서 노장들은 에너지가 소진된 듯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지만 마지막 1분간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오성옥은 “후배들이 큰 선물을 줬다. 동메달이지만 금메달 못지않다. 후배들에게 큰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 번이나 치른 예선과 오심 논란 등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까지 그들이 걸었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큰 박수와 동메달이 있었기에 이들의 퇴장은 쓸쓸하지 않았다. 오성옥은 “열한 살 된 아들 승구가 엄마 없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 사랑을 듬뿍 주겠다”고 말했다. 21개월 된 딸을 둔 오영란은 “동메달도 값지게 딴 것이니까 딸 서희가 뜻 깊게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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