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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국가연합 주도 ‘제3의 수퍼파워’ 꿈꾼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후진타오(65·胡錦濤·사진) 중국 국가주석은 컴퓨터 같은 기억력과 절도(節度), 신중함을 자랑하는 지도자다. 혁명과 전쟁터를 누빈 최고지도자 마오쩌둥·덩샤오핑 같은 카리스마와 돌파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정직하고 예측 가능한 리더십으로 13억 중국을 6년째 이끌고 있다. 2012년(제18차 공산당 전당대회)까지 권좌를 지킬 후 주석은 집권 후반기에 중국을 미국·유럽연합(EU)에 필적하는 ‘제3의 수퍼파워’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펼치고 있다.

후 주석이 25일 한국에 온다. 10년간 후계자 수업을 쌓은 뒤 6년간의 통치 경험을 갖춘 그는 올림픽이라는 초대형 이벤트를 통해 원숙하고 세련된 지도자로 거듭나고 있다.

후 주석은 한국에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 이명박 정부 들어 한·중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고위 인사는 “회담장에서 후 주석은 성실과 진지함의 표상 같았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한 고위 관계자도 “베이징 정상회담 당시 의제 외 발언을 일절 생략한 채 한 시간 동안 주어진 의제를 정확히 소화해 내는 걸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 비해 인간미와 유연함·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후 주석을 발탁한 덩샤오핑은 그의 장점으로 ‘신의·원칙·경험·젊음’을 꼽았다. 후진타오는 50대 후반까지 원고를 보지 않고도 각종 연설과 회담을 치러 내는 뛰어난 기억력을 과시하곤 했다.

후 주석은 1998년 4월 국가부주석 자격으로 방한했다. 그때만 해도 해외 무대가 낯설었는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당시 그는 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한국을 살펴봤다. 롯데호텔 2층 리셉션장에서 정·재계 인사들과 짧은 인사말을 나누다 홀로 무언가 생각하며 서 있는 장면도 있었다. 대화 도중 오른쪽 입 꼬리가 올라가는 어색한 표정도 노출했다.

하지만 요즘 후 주석에게선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그는 22일 “올림픽이 처음으로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가진 중국에서 열렸다. 이는 세계의 중국에 대한 신임이자 중국의 세계에 대한 공헌”이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올림픽 폐막식 참석차 베이징에 온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등을 만난 자리에서다. 전 세계를 향한 당당함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후 주석은 올림픽 이후 첫 방문지로 삼은 한국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그중 핵심은 중국의 경제·문화·스포츠를 앞세운 ‘소프트 외교’다. 올림픽에서 확인된 차이나 파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후 주석은 26시간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정상회담, 국회 방문, 서울숲 방문, 여수·상하이 박람회 교류 세미나, 경제인 면담 등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26일 오전 서울숲에서 30분간 한·중 대학생 100명과 대화를 하는 이벤트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야외에서 한국 젊은이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딱딱한 실무외교의 틀을 깨고 환경과 젊은 층 교류를 부각하기 위해 중국 측이 요청해 성사됐다고 한다. 6일 방한한 부시 대통령이 엄중한 경호 아래 대중 접촉을 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중국 지도부는 11월 미국 대선 뒤 새 행정부의 세계전략과 대중(對中)정책이 나올 때까지 중국의 소프트파워 확산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후 주석의 방한에는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바로 남북한의 안정적 관리와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겨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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