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종목 교체, 4년 뒤 숙제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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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24면

축제의 끝은 쓸쓸하다.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이용대의 윙크나 박태환과 장미란을 향한 환호도 이제는 잠잠하다. 수영장에 물보라를 일으켰던 손성철의 도전은 이미 지난 일이 돼 가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은 우리에게 주력 종목의 세대교체라는 과제를 남기고 막을 내렸다.

베이징에서 온 편지

아성을 구축해 왔던 양궁과 레슬링이 흔들렸고, 권투의 퇴조는 역력하다. 특히 최근 몇 차례 올림픽에서 권투가 걸었던 길에 레슬링이 접어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구 구조의 변동으로 권투나 레슬링 등의 선수 기반이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영이나 골프 등 일부 종목의 선수 기반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반면 육상이나 수영·카누 등의 종목에서 출전권을 얻게 된 것 자체가 대한민국 선수단 주력 종목의 세대교체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선수 수급 구조를 감안했을 때 조만간 주력 종목에 일부 변화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국제 경쟁력에서 비교 우위가 있다고 판단되는 종목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올림픽의 성과는 사회·문화적 파급효과를 유발함은 물론 국가 브랜드 가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 선수와 지도자·스포츠과학자, 그리고 개최지가 있었다.

우선 선수와 지도자의 노력이 있었다. 우리는 올림픽 기간 동안 보게 되는 선수와 지도자의 땀과 노력에 주목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땀과 눈물은 상상 이상이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그야말로 선수들은 평생을 준비한다. 부상으로 출전권을 포기하겠다고 연구실로 찾아와 눈물 흘리던 선수,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해 초점 없는 눈으로 강의실에 앉아 있던 선수, 그리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선수까지 개인적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평생을 준비해 온 많은 선수를 접하게 된다. 결과는 다르지만 모두 어마어마한 훈련을 소화해낸 선수들이다. 체중 조절을 위해 이틀 동안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기도 하고, 휴일도 없이 매일 열 시간 가까이 훈련하기도 한다. 선수와 지도자의 노력이 성과의 원동력이 되었고 개인적으로 그 노력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기 때문에 그 노력이 고마울 따름이다.

둘째, 스포츠 과학자의 지원이 있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멘털 트레이닝(심리 훈련), 동작 분석 등에 적용되었던 스포츠 과학의 단편이 이번 올림픽에서는 스포츠 과학으로 융합돼 경기력으로 나타났다. 스포츠 과학자들은 경쟁으로 인한 압박이 심한 상태의 선수를 깨지기 쉬운 그릇 다루는 것처럼 항상 조심스럽게 지원한다. 또한 장기간 선수의 합숙에 동행하기도 하고, 선수의 압박감이나 경기 결과에 대한 책임도 때로는 나눠 져야 한다. 팀 구성원이기 때문에 겪어야 되는 압박감과 책임, 그리고 긴장감을 묵묵히 감내해 준 스포츠 과학자의 노력도 올림픽의 성과에 기여한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개최지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문화적으로 유사한 베이징에서 개최된 대회였기에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안정될 수 있었다. 또한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시차 역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선수가 경기를 하는 데 제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장거리 원정 경기에서 시차와 문화적 이질감을 완화하고 정상적인 경기력을 발휘하는 데는 약 3개월이 필요하다. 시차로 인한 경기력 저하는 이번 대회 한중일의 선전과 유럽 팀의 전반적 부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베이징이 개최지였기 때문에 우리는 관중이나 경기 운영으로 인한 손실보다는 시차나 문화적 유사성으로 인한 이득이 많은 대회였다. 이 역시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전반적 선전 이유일 것이다.

스포츠는 인생에서 패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패배를 인정하는 용기가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임을, 다시 패하지 않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면 실패를 극복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바벨을 놓지 못하던 이배영, 마지막 몇 초에 승부가 뒤바뀐 남현희, 결승전에서 허무하게 패한 왕기춘, 그리고 다른 많은 선수들…. 스포츠에서 패자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패배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다시 또 2012년의 도전을 위해 땀을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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