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클어진 교원 인사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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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도 교장으로 공모하고, 교사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는 내용의 교원인사 개혁방안 마련이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23일 서울교대에서 '교원 인사제도 개선방안' 공청회를 열고 개선안을 발표하려 했으나 전교조 등 교직단체의 거센 항의로 중도에 포기했다.

이번 개선안은 교장 임용.교사평가.교사자격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안을 담은 것이었다. 지난해 7월부터 교육인적자원부와 관련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8차례 워크숍을 거쳐 마련됐다. 정부의 의중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교직단체.학부모 단체.교장단 등은 이 방안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단체들 간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엇갈린다.

◇현행 제도의 문제=현행 교원 승진과 평정 제도는 1969년 이후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과 무관하게 연수 학점을 부지런히 따놓거나 평가자인 교장.교감에게 좋은 점수(근무성적평정)를 딴 교사가 승진해 왔다. 자격체계도 '2급 정교사→1급 정교사→교감→교장' 등 사다리 구조로 돼 있다.

이종재 KEDI 원장은 "학교 조직의 관료화, 왜곡된 승진 경쟁 문화, 갈수록 떨어지는 전문성 때문에 학교교육이 부실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학생.학부모의 의사와는 무관한 평가제도나 폭력 교사.정신병력 교사 등 부적격 교사를 중도에 걸러낼 수 있는 장치도 없다.

◇개선 방향=KEDI가 제안한 새 인사제도는 승진.평정 중심의 인사제도를 개혁하려는 게 핵심이다. 무엇보다 '학생을 잘 가르치는'교사를 우대하겠다는 것이다.

교육계 밖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학교를 경영할 수 있도록 일정부분 교직을 개방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에 따라 KEDI는 교장 승진에 필요한 경력기간을 25년에서 22년으로 줄이고 초빙제.공모제.선출보직제 등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핵심은 공모제 신설 및 확대다. 경력 10~15년 이상인 교사를 상대로 교장직을 공모하는 것이다. 전체 공모제 대상 학교의 10% 범위 내에서 교사자격증이 없는 일반인도 교장으로 선발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특히 전교조 등이 요구하는 교장선출보직제(교사들이 교장을 뽑고, 학교운영위원회가 이를 심의하며, 교장 임기를 마치면 일반 교사로 복귀)도 일정부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치학교'를 지정해 실험적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교사 평가도 동료 교사에 의한 다면평가를 실시하되 학생.학부모의 평가 참여는 학교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이밖에 정신적 장애인, 장기결근.상습적 태만 및 성폭력자, 폭력 교사는 학생.학부모가 신고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교직단체 반발=이번 개선안은 교직단체의 반발을 불러 왔다. 교사평가는 당초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학생.학부모의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했으나 자율 시행으로 대폭 물러났고, 선출보직제 시범 도입 방안도 포함됐으나 교직단체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학부모나 평교사.교장 등 집단별로, 또 교원단체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려 논의단계에서 이전투구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교조.참교육전국학부모회 등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한국교총.교장단협의회 등 기득권 세력에 교육부와 KEDI가 영합한 결과물을 내놨다"며 "교장자격증제를 폐지하고 교장보직제를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한국교총도 이날 "교원인사제도 논의 결과를 왜곡한 KEDI는 공개사과하고 전교조는 이를 투쟁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공청회 의견을 반영한 최종보고서가 다음달께 제출되면 다시 의견수렴 절차를 밟아 구체적인 시행계획을 마련하겠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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