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달라져야한다>3.당적변경 밥먹듯-선진국 의원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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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0여년전인 83년1월.미국 언론의 초점은 단연 텍사스 출신민주당 필 그램 하원의원이었다.그램의원이 의회 개원을 3일 앞두고 『민주당은 뜻이 안맞아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우리네 같으면 그냥 탈당하고 다른 당으로 가버리면 그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램의원은 다른 길을 택했다.그는 『유권자들은 민주당후보인 나를 뽑아준 것이므로 정정당당히 심판받겠다』며 의원직을사퇴하고 기꺼이 보궐선거를 치렀다.민주당측에선 총력을 다해 그의 당선을 막으려 했지만 그는 승리했다.
미국에서도 원한다면 의원들은 마음대로 당적을 바꿀 수 있다.
제한규정은 전혀 없다.하지만 지난 55년 이래 40여년동안 당적을 변경한 의원은 상원 6명,하원 9명 등 15명에 불과하다.마구잡이 당적변경은 곧바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의 미한다.
심지어 그램의원조차 올초 공화당 대통령후보 예비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상대후보로부터 『정치소신을 바꿨다』고 비판받았을 정도다. 이와 함께 미의회 의원들은 자신의 소신이 당의 방침과 맞지 않으면 얼마든지 다른 안에 찬성투표할 수 있는 자유투표권이보장돼 있다.걸핏하면 당을 바꾸면서도 당론이라면 무조건 찬성투표하는 우리네 풍토와는 크게 비교된다.
프랑스도 비슷하다.이 나라에선 특정정당에 소속된 「에스크립션」이란 당적보유의원과 함께 당적이 없는,우리로 치면 무소속 의원들도 많다.그러나 무소속 의원들조차 선거 전에 자신의 성향을밝혀야 한다.『나는 좌파다』『나는 우파를 위해 일하겠다』『나는중도파다』는 식으로 자기철학을 공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들중 일부는 당선 뒤 자기가 밝힌 성향의 정당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정당과 상관없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투표하고 일한다.이 나라에선 당적변경의 제한이 전혀 없지만 무소속당선자들도 자신이 원래 밝힌 성향과 반대되는 투 표나 행위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주한 프랑스대사관 공보실측의 말이다. 일본은 좀 다르다.중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된 일본 의회는 계파정치의 원조라는 명성에 걸맞게 최근 3년간 활발한 당적변경이 이뤄졌다.전후 보.혁체제의 붕괴에 따른 정치판 새판짜기의 결과다.
따라서 거의 모든 당적변경은 계파 전체가 자신들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집단적으로 이뤄졌다.개개인이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갔다한 경우는 없다고 한다.
일본 중의원 의사과 직원 엔도(遠藤)는 『일본정치의 한 특징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의사에 따르지 않은채 개인의 이해를 좇아 이합집산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또 당적을 바꾸려면 같은 가이하(會派.우리나라의 계파)의 대 표자가 이를승인해야 한다는 것도 일본정치의 한 특징이다.
선진정치에서 공통된 것은 한가지다.바로 소신을 저버린 의원은정치판에서 발붙일 데가 없다는 것이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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