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을/자전거] 그림의 떡을 맛본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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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갑자기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나처럼 힘이 빠져 있는 아버지의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늘 자신같이 생각하며 타시던 초록 자전거였다. 아버지의 집과 우리 집은 걸어서 20분 정도였다. 볼일이 있을 때면 “내가 운동 삼아 가마” 하시던 아버지는 어느새 현관문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계셨다. 초록 자전거를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다. 졸업한 뒤 처음 자전거로 달리며 아버지를 생각했다.

내 고향은 충청도 시골로, 그때는 자전거가 꽤 귀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어느 날, 아버지가 멋진 자전거를 사 가지고 오셨다. 이 자전거로 동네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너무나 신나고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버지는 자전거를 열쇠로 꼭 잠가 놓고 아무도 못 타게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니 자전거의 열쇠가 열려 있었다. 이때다 싶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신나게 달렸다.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제자리에 갔다 놓으려는 마음에 속력을 높였다. 도랑길에서 급하게 자전거를 돌리다 그만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11월 추운 날씨에 물속에서 정신을 차려 일어나 보니 다리에서는 피가 철철 나고 있고 자전거는 바퀴살 5개가 부러져 있었다. 아버지에게 혼날 생각에 아픈 것도 추운 것도 몰랐다. 벌벌 떨면서 자전거를 끌고 집에 가니 아버지께서 밖에 나와 계시는 게 아닌가.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아버지 죄송해요”라며 용서를 구했다. 아버지께선 내 꼴을 보시고는 “허허라” 웃으시면서 많이 안 다쳤니, 뜨거운 물로 씻어라 하곤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제야 나는 피가 나는 다리가 움켜잡고 울어 버렸다.

지금도 그때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다 그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 자전거는 이제 나의 길동무가 됐다. 자전거를 타면 아버지의 너털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양승자 (53·주부·서울 양천구 목6동 한신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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