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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최초로 서양에 알렸던 하멜 일행 49명 추모제 열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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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이 서양에 이름을 알렸고, 우리 역시 유럽문명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뱃길 탐험가로 잘 알려진 제주의 향토시인 채바다(64·사진) 한국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 그는 22일 ‘특이한’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추모 대상은 49명의 영령이다. 350여 년 전 한국을 유럽에 알린 네덜란드 선원 하멜의 일행 가운데 한국에서 숨진 사람들이다.

1653년 8월 동인도회사 소속 무역선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네덜란드 선원 64명은 제주 부근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하는 바람에 28명이 숨지고 36명이 생존해 제주도에 닿았다. 이들은 제주·서울 등지의 병영에서 13년간 지내다 병으로 21명이 숨졌고, 15명은 탈출하거나 송환됐다. 한국을 유럽에 알린 『하멜표류기』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럽인의 첫 ‘조선 보고서’다.

채씨의 안타까움은 여기서 시작됐다. “조선이 서양문명에 눈을 뜨는 과정에 엄연히 49명의 희생이 있었는데 우리가 너무 무심했던 게 아니냐”고 되묻는다. 유럽과 한국의 연결은 바로 이들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각종 기록을 뒤지며 하멜에게 매달려 왔다. 직접 풍랑길을 따라 표류를 시도한 끝에 하멜 일행의 정확한 제주도 표착지점을 ‘대정읍 신도리’ 해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3년 전엔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던 각종 표류물을 모아 고향인 서귀포 성산읍 시흥리에 ‘바다박물관’을 세웠다. 박물관 앞 포구엔 제주의 전통어선인 ‘떼배(또는 테우)’를 띄워 체험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가 서귀포 청소년문화센터에서 진행할 추모제는 자전거 추모순례와 헌화 등의 순으로 짜였다. 한스 블릭스 주한 네덜란드 대사도 참석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이 추모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96년 ‘떼배’를 타고 제주~일본 간 첫 항해를 시작으로 2001년 전남 영암에서 일본 후쿠오카의 가라쓰항까지 400㎞ 뱃길을 돛과 노의 힘만으로 탐험했다. 백제 왕인 박사의 문화 전파 경로를 확인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는 “멀쩡한 이방인을 죄인 취급했던 우리의 과거를 털어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이라며 “조만간 제주에서 전남 해남을 거쳐 서울로 이르는 바다·강 길을 따라 항해하는 ‘하멜의 길’ 탐험에 나서 그들의 조선 생활을 재조명하겠다”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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