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마저 가슴을 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러시아 주식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삼는 러시아 RTS 지수는 19일(현지시간) 92.69포인트(5.2%) 급락해 1685.6이 됐다. 2006년 11월 이후 최저치다. 꼭 석 달 전의 고점에 비해 33%가 빠졌다. 현지 통화인 루블화 기준의 Micex 지수도 하루 새 6% 내려앉았다. 세계 증시의 모범생이 석 달 만에 문제아로 전락한 꼴이다. 국내 러시아 펀드 투자자의 시름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

◇쏟아지는 악재=주식 투자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그런데 러시아 증시는 최근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루지야와의 전쟁 때문에 생긴 미국·유럽과의 갈등이 핵심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야프 데 후프 스헤페르 사무총장은 19일 “현 상황에서는 러시아와 통상적인 비즈니스가 불가능하다는 데 회원국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전체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유럽연합(EU)에 판다. 유럽과 관계가 틀어져서 좋을 게 별로 없다는 뜻이다. 유럽 경제가 2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빠르게 둔화하고 있는 상황이라 더 그렇다.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급락도 러시아 증시를 계속 괴롭히고 있다. 생산량 기준 세계 2위 산유국인 러시아는 에너지 관련 기업이 증시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9일에도 에너지 기업이 증시 하락을 주도했다. 세계 1위 천연가스 회사인 가스프롬은 루블화 기준으로 6.7% 떨어지며 2년 새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 로스네프트도 6.8% 밀렸다.

◇이탈하는 자금=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따르면 세계 투자자는 최근 10주간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서 200억 달러(약 21조원)를 빼갔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원자재 값 급락의 피해자인 러시아·브라질 펀드의 유출이 특히 컸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소재 필그림에셋매니지먼트의 제임스 비들 수석투자전략가는 “러시아 증시는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자도 러시아 펀드에서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러시아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5월 2521억원, 6월 351억원이 늘어났지만 지난달엔 300억원이 감소했다. 이달 들어서도 34억원이 줄어든 상태다. 브릭스 펀드 등 자금의 일부를 러시아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까지 합치면 실제감소액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굿모닝신한증권 이계웅 펀드리서치팀장은 “지정학적 불안 요소가 사라지기 전에는 본격적인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