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영토 표지석 1호, 복원 3년만에 철거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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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전 한국산악회 독도 영토 표석. 본래의 산악회 표석은 1952년에 제작됐으나 선박 접안이 여의치 않아 설치되지 못하다가 1953년에 설치됐다. 사진=최선웅씨 제공

독도에 설치된 표지석 중 가장 오래된 영유권 표지석이 복원 3년만에 뽑혀져 산산조각이 났다. 1953년 한국산악회가 세운 독도 표지석이다.

경북 울릉군은 지난달 30일 인부를 시켜 독도 동도 선착장 왼쪽 언덕에 세워져 있던 표지석을 철거했다. 비석에 새겨진 문구에 들어있는‘리앙쿠르’(Liancourt)라는 문구가 2005년 정부가 고시한 독도의 영문 표기 기준(Dokdo)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울릉군 관계자는 “비석은 울릉도로 운반해와 갈아서 버렸다”고 말했다.

1953년 한국산악회가 세운 독도 ‘1호 비석’은 유실되기 전까지 독도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었다. 표지석 앞면에는 ‘독도 獨島 Liancourt’, 뒷면에는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학술조사단 KOREA ALPINE ASSOCIATION 15th Aug 1952’라고 새겨져 있었다. 산악회는 당시 일본이 일방적으로 정한 행정구역을 적어 세워 놓은 나무 말뚝을 뽑아 내고 독도가 한국령임을 대외에 알리기 위해 독도에 사상 처음으로 한글 비석을 세웠다.

하지만 한국산악회 측은 독도 표지석이 철거되고 없어진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산악회의 김종호 총무이사는 “표지석 철거는 처음 듣는 소리다”며“지난달 31일 경상북도에서 산악회 표지석의 영문표기를 변경해 설치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철거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비석은 2005년 일본의 독도 도발을 계기로 경북도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복원했다. 경북도는 예산 3000만원을 들여 2005년 한국산악회 비석 등 독도 표지석 3개를 복원 건립했다. 당시 경북도는 한국산악회 관계자들을 독도 현지로 초청한 가운데 복원기념식을 열어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울릉군이 표지석을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달 중순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독도의 표준 지명을 ‘리앙쿠르 암’으로 변경한 직후다. 당시 BGN은 독도를 ‘주권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했다가 이틀만에 한국령으로 원상회복시켰지만 표준 지명은 ‘리앙쿠르 암’으로 등재했다.

울릉군은 비석 제거에 앞서 문화재청에 비석 제거를 위한 현상변경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천연기념물인 독도를 관리하고 있는 문화재청은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울릉군의 비석 제거 신청을 승인해줬다. 문화재보호법상 천연기념물의 현상을 변경하려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시급한 사안이라 정례 회의까지 기다릴 수 없어 위원 6명의 검토의견을 받아 승인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한국산악회 비석 철거안과 국무총리실에서 요청한 한승수 국무총리 명의의 독도 비석 건립안을 같은 날 승인해줬다. 한승수 총리의 친필이 새겨진 독도 표지석 설치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위원 9명의 의견만 수렴했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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