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매맞는 아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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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간사회에 있어 남성우월사상과 그에 따른 여성학대의 역사는 인류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용감한 전사(戰士)」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여성을 지배하는훈련을 받도록 했다는 점도 원시사회의 공통된 특 징 가운데 하나다. 인류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남미나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원주민사회에는 아직도 원시시대부터 이어져온 남편의 아내에 대한잔혹한 폭력관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예컨대 아내가 남편의 뜻을거스를 때 남편은 아내의 귀를 뚫고 그 구멍에 장 식한 나무줄기를 집어넣어 잡아당긴다든지,불에 달군 막대기로 지지거나 도끼를 마구 휘두르는 따위의 관습이 있다.
아직 미개한 지역이니 그럴법 하다 싶겠지만 문명사회라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다.19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에는 「엄지의 법(Rule of Thumb)」이란 게 있었다.남편이 자신의 엄지손가락보다 가느다란 막대기를 사용해 아내에게 매 질하는 것을허용한 법이다.1824년에는 미국 미시시피주 대법원이 이 법을원용해 남편의 폭력을 합법화한 일도 있었다.
「레이디 퍼스트」를 생활의 기본 에티켓으로 삼는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가정폭력을 법으로 제재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부터의 일이다.그만큼 가정폭력은 인종.민족.종교.사회경제적 수준과 관계없이 전세계적으로 광범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남편에게 폭행당해 치료받으러 온 환자중에는 의사.변호사.판사.교수들도 많다.지식인이라해서 남편의 폭력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한 미국 의사의 이 말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
미국의 경우 여성 4명중 1명은 남편이나 전남편에게 폭행당한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나온 적이 있지만 가정폭력은 대개 은폐되거나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탓에 정확한 실상이 밝혀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이번이 마지막」 이라거나 「남편을 변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정폭력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가정폭력방지법」제정에 걸림돌이 된다면 심각한 문제다.사위를 살해하고구속된 할머니의 경우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한 가정비극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가정의 달」에만 생각할 문제 는 분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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