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연보호 내걸고 자연훼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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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동대문 구청 직원 5백여명이 주중 오후 시간을 이용해 국립공원 북한산으로 자연보호 등반을 나갔다.녹음이 어우러지는 계절이다.「자연은 사람 보호,사람은 자연 보호」라는 표어가 우리나라처럼 절실한 곳도 세상에 별로 없다.인구 밀 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다 공업화.도시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하기 때문에 자연은 불가불 훼손되고 있다.자연이 베푸는 보살핌을 잃으면 사람은 생존할 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이들 공무원의 자연보호 등반 취지는 의미있고 고 상한 것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진행은 전혀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요즘 들어서는 산에서 취사하는 사람은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보호 의식이 전국민적으로 확산돼 있다.이를 정면으로 거슬러 이들 5백여명은 지정장소 아닌 곳에서 국을 끓이고 고기를 굽 는 대규모 취사를 벌였다.산에 쓰레기를 버리고 수목을 채취해 집에 가져가고 차량 통행이 제한된 산길에 미니버스와 쓰레기 수거(收去)용트럭을 몰고 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에게도 이런저런 변명이 있을 수 있으리라 짐작한다.「재수없이 문제가 됐으니 그렇지 그런 자연훼손 행위는 극히 부분적이었다.사기 진작도 겸한 행사였기에 흥이 도도해지다 보니 약간 정도가 지나쳤을 뿐」이라고.그러나 이번 일은 자 연보호 정신과공무원의 태도를 철저히 반성할 기회가 돼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자연은 방금 신록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그 품속에 들어가 마음대로 응석을 부려도 좋은 젊고 튼튼한 어머니가 아니다.어느 편이냐 하면 오히려 병간호를 하듯 극진히 「효성」을 다해 돌보아야 할 노모(老母)와도 같다.그 렇기에 더욱자연 보호는 철저해야 한다.
공무원은 「공무원도 사람」이라는 하소연 수준의 사후적 변명보다 항상 체통을 지키는 것이 옳다.자연을 보호하러 가서 자연을훼손하는 따위의 우리 공무원 사회에 넓게 퍼져 있는 양면성 폐단을 스스로 발견해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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