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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지리기행>23.망우리 공동묘지의 역사적 인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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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아파하는 사람이나 어떤 일에서 쓴잔을들고 상실감 속에 상심하고 있는 사람들은 공동묘지 산책이 위안이 될지 모른다.어떤 무덤에나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그것이 아무리 허 름하고 세상에 거의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나름대로의 역사는 있는 법이다.하물며 역사의 기록에 자취를 뚜렷이 남긴 사람의 무덤에 있어서는 말해 무엇하랴.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에 가면 그런 분들의 무덤을 여럿 만나볼수 있다.시인도 있고 독립투사도 있으며 정치범으로 사형을 당한사람의 무덤도 있다.그리고 산 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모두가 절대 평등의 상태에 놓여 있다.애끓는 묘 비명을 남긴 어린이의 무덤도 있고 죽음 조차도 끊어놓을 것같지 않은 비명에 간 사랑하던 사람들의 무덤도 있다.그 모두가 그만그만한 크기의땅을 차지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화스럽게,그리고 평등하게 자리를 같이 하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도 풍수를 처음 접한 곳이 이곳이기에 망우리에 올 때마다의 감회는 남다른 바가 있다.왜 스무살도 되지 않던 어린 나이에 이곳에 와서 마음의 평정을 얻고 갔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죽은 자들 사이에서 살아 있다 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의 무덤.묘석은 없고 그가 세상을 떠나던 1956년 추석,친구들이 세웠다는 조그만 시비가 덩그렇게 무덤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세월이 가면』중 이부분만 거기에 새겨져 있다.아들 세형이 후기에 남긴 말처럼 「초로의 어머니,이제는 장성한 당신의 어린 딸과 두 아들이/당신의 시를 읽고 있는 여기가 그립습니까.」정말 사무치는 그리움을일깨워주는 품격을 지닌 무덤이다.
서북서향(亥方)을 하고 있는 그의 음택은 정면으로 도봉산과 북한산(朝山)을 아련히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북쪽으로는 불암산이 선명히 눈에 잡히는 터다.소위 술법으로서의 풍수를 한 지관이라면 결코 택하지 않을 좌향이지만 그것이 무슨 관계인가.나는 오히려 그가 그의 시풍(詩風)에 가장 적합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바로 앞 둔덕에는 빽빽이 산소들이 들어섰고 그 너머로는 신내동 아파트가 그 역시 틈을 주지 않고 조밀하게 세워져 있다.도봉.삼각이란 조산의 공허함,앞 둔덕 산소들의 죽음의 공허함,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도시 아파트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철학자 윌 듀란트의 표현처럼 「운명의 장난을 일소에 부치고 죽음의 부름에도 미소로 응할 수 있기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 들이 있다면 반드시 봐두어야 할 지기(地氣)다.
나는 시인의 인성이 어떠했는지도 모르고 일생을 어떻게 살다 갔는지도 모른다.그저 그의 시를 읽었을 뿐이고 그의 죽음 이유가 술 마시고 돌아와 갑자기 닥쳐온 심장마비 때문이란 그의 아들의 술회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또 그가 서른한살 젊은 나이에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도 들었다.하지만 그런 사실 또한 무덤 앞에 서면 무의미해지고 만다.그저 시인의 성품이 땅의 성격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짐작은 든다.이곳에서 보이는 조산인 북한산산체의 모습은 전체로 탁자 모양의 평탄함을 기본으로 갖고 있다.그러나 가본 사람은 알다시피 그 산은 기암괴석과 깊은 속살을함께 지닌 매우 복잡한 산이다.그의 시가 내비치는 허무가 깔린무덤덤함 속에는 마비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고뇌가 얽혀 있었던것은 아니었을지 .시에는 무지한 내게 무덤은 그렇게 말해주는 듯하다.(무덤 찾기가 쉽지 않아 묘지번호를 밝혀둔다.102308)이곳에서 잘 닦인 산책로를 십여분쯤 오르면 죽산 조봉암의 산소에 닿을 수 있다.일제 때 공산당원으로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 후 초대 농림부장관.국회부의장을 지냈으며 대통령후보로 차점낙선했던,그러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당한 한 정치 가의 무덤에 오르는 날은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것이 좋다.시인의 무덤 가는 날은 눈이 내리면 격에 어울리던데 여기서는 또 비라니,아마도 나는 구제받기 힘든 심정적 건달인 모양이다.정남향임에도 불구하고 봉분에 잔디가 잘 자라지 못했 다.기분 탓인가 근처 계곡을 스쳐가는 바람 소리 스산한데 그의 원혼은 어디로 갔을까.그가 2년간 공부했던 모스크바의 파괴된 공산주의 이념 속에서 회한에 잠겨 있을 것인가,그가 충고를 해주고 떠났던 역시사형당한 남로당 박헌영의 혼령 과 함께 역사의 허망을 반추하고있을 것인가,그가 오르고 싶어했던 청와대의 하늘을 배회하고 있을 것인가.이도저도 아니면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이었음을 절감하며 평온하게 저승터를 잡고 있을 것인가.
우울하다.우울을 내칠수 있는 소파 방정환의 무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이럴 때일수록 다행이다.역시 서른셋 젊은나이에 아까운 생을 마감해버린 사람이지만 어린이를 떠올리게 해주는 사람이어선가 죽음의 음습함이 훨씬 덜하다.무덤 앞에 있 는 「동심여선(童心如仙)」이란 석비도 아름답고 그 밑에 조그맣게 새겨진 「어린이의 동무」라는 표현도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남남동향을 하고 있는 봉분 앞에 앉아 오른쪽을 보니 한강이 가로질러 흐른다.한데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이 즉각적으로 내눈에잡힌다.무덤을 향하여 들어오는 한강 물줄기(得)는 그 진로가 분명한데,흘러나가는 물줄기(破)는 꼬리를 감추듯 아차산 뒤편으로 묘연(渺然)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살아온 어린이의 궤적은 누구의 눈에도 확연하다.감추어진 부분이 없다는 뜻이다.그것은 이 산소의 득방(得方)이 상징하는 바에 그대로 부합한다.하지만 어린이의 뒷날은 누구도 모른다 .꼬리를 감춘 파방(破方)의 수세(水勢) 역시 어린이의 훗날을 상징하는 듯하니 이 어찌소파의 영면의 장소로 어울리지 않는다 할 수 있으랴.들어오는 물은 적연묘묘(寂然渺渺)요,나가는 물은 묘연자적(杳然自適)이니이는 풍수가 바라는 법도이기도 하다.결국 풍수가 원하는 바가 어린이의 마음과 같은 것이란 얘기가 되는 셈인데,정말 좋은 깨달음이다.
***소 파와 죽산 사이에는 만해 한용운의 묘소도 있다.부인과의 쌍봉 합장분인데 두 봉분 사이의 땅 기운은 온화유순(溫和柔順)의 대표적인 예다.점심도 굶은데다가 산소 사이를 헤집고 다닌 뒤끝이라 심신이 피로하던 참인데 이곳의 지기가 모든 것 을 풀어준다.
1933년 하필이면 조선왕조의 능들이 밀집한 동구릉 자락에 공동묘지를 잡은 일제의 행패가 가증스럽기는 하지만,강원도 이천군 안협면 백운산에서 발원한 한북정맥(漢北正脈)이 한강을 만나며 스러지는 언저리에 자리한 이 무덤들은 요즘 기 준으로 하자면 참으로 명당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전 서울대교수.풍수지리연구가〉 서북서향을 한 시인 박인환의음택은 정면으로 도봉산과 북한산을 바라보고 있다.또 약간 북쪽으로는 불암산(사진 뒤쪽 중앙)이 보다 선명하게 눈에 잡힌다.
풍수적 법도에는 어긋나지만 시인의 고독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교 훈적이다.
〈최영주 기자〉 최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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