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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조촐해도 알찬 '한국의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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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21일 밤(현지시간) 런던 시내 한가운데 외신기자클럽에서 '한국의 밤'행사가 열렸다. 지한파 영국인과 일부 교민이 모여 만든 '앵글로-코리안 소사이어티'가 주최하고 한국관광공사 런던 지사에서 후원했다. 외신기자클럽의 멤버인 기자들과 미디어 홍보 관계 종사자들에게 한국을 알린다는 취지다.

격식은 다 갖추었다. 평범하고 오래된 사무실 같은 클럽 건물로 들어가 참석자 등록을 했다. 낡았지만 정갈한 2층 홀에 100여명이 모여 와인을 마시며 인사를 나눴다. 대충의 수인사가 끝나갈 즈음 본행사가 시작됐다. 관광공사의 해외홍보용 비디오를 보여주고, 한국 여자 유학생 한 명이 나와 국악테이프 음악에 맞춰 태평무를 췄다. 그리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한국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고,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그러나 외국인 참석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외신기자클럽 멤버 가운데 한국을 가봤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로이터 출신 프리랜서 언론인은 "평양에 가본 적은 있다"고 했다. 롤스로이스 홍보 담당자는 "사흘간 서울에 간 적이 있는데, 호텔만 드나들어 별 기억이 없다"고 했다. 영국인에게 한국은 먼 나라다. 그래도 한국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태평무를 춘 김향숙씨는 질문 공세를 받느라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 무슨 의미의 춤이냐, 동작(춤사위)은 직접 창작한 것이냐 등등. 4년 전 영국에 유학온 金씨는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홍보 담당자는 "손동작이 인상적이다. 모든 동작이 틀에 꽉 짜여 있는 발레보다 더 창의적이고 독특했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은 바람에 발동작을 못 봤다"며 아쉬워했다. 로이터 통신의 여기자는 "친구가 한국 음식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김치를 꼭 먹어보라고 했다"면서 김치만 꼭꼭 씹고 있었다.

한국인 학생들의 자원봉사, 한국인 반찬가게의 실비 음식 협찬, 그리고 앵글로-코리안 소사이어티 회원들의 참가비 15파운드(3만원 상당)와 약간의 운영기금이 예산의 전부다. 조촐했지만 초라하지 않았던 '한국의 밤'이었다.

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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