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허들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정준(左)이 18일 올림픽 남자허들 110m 예선에서 기민한 동작으로 허들을 넘고 있다. 이정준은 1회전을 통과해 19일 열리는 2회전에 진출했다. [베이징=연합뉴스]
전광판에 기록이 떴다. 이정준 13초65, 5위. 자신의 한국기록(13초56)에 0.09초 뒤진 이정준의 이름 옆에는 통과를 뜻하는 ‘Q’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이정준은 대기실로 내려가 이정호 코치와 다른 조 예선을 지켜봤다. 각 조 1~4위를 뺀 나머지 선수 중 상위기록자 8명이 2회전에 오른다. 마지막 조인 6조 경기가 끝나자 이 코치가 소리쳤다. “정준아, 통과다!” 가슴을 졸이던 이정준은 그제야 활짝 웃었다. 미약하지만 한국 육상이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정준이 18일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육상 남자 110m허들 1회전에서 13초65를 기록, 26위로 32명이 겨루는 2회전에 진출했다.
한국 육상이 올림픽 트랙종목에서 1회전을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도로경기에서는 메달리스트(남자 마라톤 황영조·이봉주), 필드경기에서는 결선 진출자(남자 멀리뛰기 김종일, 여자 높이뛰기 김희선)까지 배출했지만 트랙은 불모지였다.
이정준(右)이 연인이자 허들 여자 한국신기록 보유자인 이연경과 함께 지난해 호주 전지훈련 도중 포즈를 취했다.
◇열매 맺어가는 투자=이정준은 지난해 소속팀인 안양시청의 지원으로 중국에 건너가 8개월간 류샹(중국)과 함께 훈련했다. 류샹이 뛰는 모습, 넘는 모습을 지켜보고 따라 하며 기량을 키워갔다. 올해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6개월 가까이 훈련했다.
이정준은 “중국에서는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몸으로는 느는 모습이 안 보였다. 그런데 일본 전지훈련을 갔을 때 중국에서 배웠던 것들이 몸에 붙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기량 향상은 기록으로도 나타났다. 이정준은 4월 26일 태국 오픈 육상대회에서 13초63의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올림픽 기준기록(B기록·13초72) 안에 들어 얻은 베이징 올림픽 티켓은 덤이었다. 이정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주 만인 5월 17일 동일본 실업단 육상대회에서 자신의 한국기록을 13초56으로 갈아치웠다. 1회전을 마친 뒤 이정준은 “2회전에서는 한국기록을 세우면서 준결승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고 얘기했다.
◇사랑은 허들을 넘으며=이정준은 허들 커플이자 한국기록 커플이다. 이정준의 연인은 여자 100m허들 한국기록(13초23) 보유자 이연경(27·울산시청)이다. 육상 선후배(이연경이 3살 연상)로 시작한 두 사람은 2년 전부터 연인이 됐다. 3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방황하던 이정준을 이연경이 챙겨주면서 사랑이 싹텄다. 이연경은 한국 허들의 철녀로 이름이 났지만 기준 기록에는 미치지 못해 이번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다.
이정준은 “처음 사귈 때는 누나, 아니 연경이가 더 잘나갔다. 그때 나는 별 볼일 없었다. 그래서 부끄럽지 않은 남자친구가 되려고 열심히 했다”며 “경기를 앞두고 아침부터 허리가 아픈데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연경이와 전화통화를 한 뒤 마음이 편해졌다. 심리적인 부분에서 늘 도움을 주는 나의 정신적 지주”라고 표현했다.
베이징=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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