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부모모시기'풍속도-게임기.삐삐 효도선물 신세대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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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강원도 춘천시에 사는 유성균(65)할아버지는 지난해부터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다.그가 부인과 함께 매일 「마성(魔城)전설」「보석쌓기」「테트리스」게임에 몰두하게 된 것은 순전히 며느리덕분이다.
『명절때 온 가족이 모이면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컴퓨터 게임하느라 그나마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할아버지.할머니와 대화할 시간이 없더군요.늘 먼발치에서 「그것이 그렇게 재미있냐」며 쓸쓸해 하시던 아버님.어머님께 하루는 게임기와 게임 팩을 사다드렸지요.』 그렇게 배우게 된 것이 지금은 수준급.아이들은 맹연습하시는 할아버지.할머니와 누구 점수가 높은지 겨루고 싶어 안달이다.며느리 조인경(31.서울송파구 올림픽선수촌 아파트)씨는전화로 그날의 최고 점수를 물어보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 습이너무 다정해 보인다며 치매방지에도 좋고 손자들과도 친해질 수 있는 게임 배우기를 다른 노인들께 권하고 싶다고.
인천광역시가정3동의 주부 김현숙(30)씨는 환갑이 갓 지난 「젊은」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지난해 시어머니께 8세 연상의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고민이 시작됐다.「그 분」을 두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
『시어머니도,남편도 제 눈치만 보는 거예요.생각끝에 저녁을 근사하게 차려놓고 할아버지를 초대했어요.그때 시어머니가 기뻐하시던 모습에서 정답을 찾았다는 기분이었습니다.』 그후 할아버지생신에 남성화장품을 선물하기도 하고,『시집가는 날』처럼 노인들도 즐길 수 있는 뮤지컬 티켓을 구해드리기도 하면서 이제는 한식구처럼 친해졌다.金씨는 『두 분이 결혼하실지는 미지수지만 어머님이 믿고 의지할만한 남성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 이웃들이 개발한 신세대식 효도법들이다.
친정 어머니와 삐삐를 하나씩 나누어 갖고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딸도 있다.직장에 다니는 주부 박은미(38.서울서초구잠원동 대림아파트)씨는 항상 마음뿐,자주 연락 못해 늘 죄송한마음이던 친정어머니(67)와 최근 삐삐 연락망을 구축했다.메시지 남기는 법을 알려드리고 서로 시간날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을부담없이 남겨놓는다.
『「흐드러진 진달래꽃을 보니 늘 허덕이는 네 생각이 나서 삐삐친다.아무리 바빠도 세끼 밥은 잘 챙겨먹겠지」하는 어머니 메시지에 저는 「엄마,제 걱정은 마세요.허리 아프신 것은 좀 어떠세요」라고 화답하지요.』 이같은 효도 신풍속에 대해 건강가족실천운동본부 황준식(黃俊植.70.醫博)총재는 『과거 농경사회 대가족제 아래 통용되던 가부장적 효도를 요즘 젊은이들에게 기대하기란 힘들다』고 전제,부모.자식간에 서로의 입장과 생활방식을인정하면서 거기에 어울리는 효도법을 찾 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조건적인 공경」을 강요하기보다 자식을 독립된 개체로 보는자세야말로 자연스런 효를 유도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게 부모들을 향한 그의 조언이기도 하다.
이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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