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있는 인문.교양서 인기 상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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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경박단소(輕薄短小)는 이젠 그만-.
인문.교양서적을 찾는 독자들의 취향이 달라지고 있다.가볍고 톡톡 튀는 책에서 호흡이 길고 깊이 있는 쪽으로 비중이 옮겨가고 있다.불황에 허덕였던 지난해 우리 출판계에서는 화제성 일화나 별난 에피소드들을 모은 감각적 혹은 상업적인 책들이 주류를이뤘다. 주제만 조금 무거워도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출판사들 또한 진지한 책의 발행을 꺼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대표적인 책들은 『책속의 책』(우리문학사),『어 그래!』(새로운사람들),『배꼽티를 입은 문화』(자작나무)등.각각 50여만부,27만여부,10만여부가 나가는 호조를 보였다.이런 분위기를타고 『상식 속의 상식』(장락),『너 이거 알아 』(신원문화사),『호주머니 속의 별난 상식』(사민사),『풀리지 않는 세계사미스터리』(하늘출판사)등 잡학상식류의 책들이 줄을 이었다.여기에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각 곳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살핀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 (민음사),『식인과 제왕』(한길사)등이 덧붙여지면서 온갖 토픽들을 짤막하게 정리한 책들의 주가가 높아졌다.일부에서는 「인문학의 실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올들어 독서시장에 뚜렷한 변화조짐이 일고 있다.대형서점들의 인문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종전의 잡학책들이 보이지 않는다.특히 역사물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선두주자는 단연 시오노 나나미의 저술들.
『로마인 이야기』(한길사)세권등 모두 아홉권이 나온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는 현재 40여만부가 팔리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꼼꼼한 고증과 극적인 서술방법이 돋보인다.우리 역사를 다룬 책들의 인기도 주목거리.지난해 8월이후 최근까지 세 권이 나온 『역사신문』(사계절)은 6만여부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역사기술에 신문의 형식을 접목,고대부터 조선전기까지 한국사의 흐름을 보도.해설.쟁점.인터뷰.사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구성한 아이디어가 새롭다.
태조 이성계부터 순종실록까지 조선왕조 오백년 역사를 간추린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들녘)도 발간 한달반만에 2만여부가 나갔다.또 극작가 신봉승씨가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조선사의 뒷얘기를 풀어간 『조선사 나들이』(답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통사로는 『한국사신론』으로 유명한 한림대 이기백교수의 『우리역사의 여러 모습』(일조각)이 흥미롭다.농업.통신.정치.과학.
의복.명절.학교 등 우리 삶의 자취를 잘게 잘라 풍부한 사진자료를 동원해 설명한다.
이밖에 일본의 겉과 속을 객관적 입장에서 접근한 『김현구 교수의 일본 이야기』(창작과비평사)와 에세이 형식으로 청동기부터철기시대에 이르는 한반도의 생활상을 그린 『고고학 이야기』(가서원)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반가운 현상은 내용 의 폭과 깊이가 한층 성숙해졌다는 점.단순한 지적 자극의 차원을 넘어 일반인들의 교양수준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종전에는 「상식밖의 사」「 백장면」「이야기 사」등 단편적인 얘깃거리를 모은 역사서들이 시장을 이끌었다.
또한 여기저기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짜깁기,편저 형식으로 간행된 기존서적들과 달리 해당분야에서 일정한 지식을 축적한 전문가들이 집필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푸른숲 김학원 주간은 『에피소드 중심의 가벼운 책들이 독서 대중화에 공헌한 점은 인정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제는 깊이있는 정보를 찾는 독자들에게 맞게 출판사의 기획력도 배가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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