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청산부터 나선 북한 정권 공장 기술자, 예술인에겐 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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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노동절에 김일성의 초상화를 든 북한 여성들이 친일파, 민족 반역자 등의 철저한 숙청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북한 역사는 일제시대에 대항한 혁명역사를 강조한다. 이 같은 전통은 북한 정권 수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맥을 이어가고 있고, 정통성을 주장하는 근간이다.

1946년 2월 8일 임시정부 격으로 구성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위원장 김일성)가 북한 사회주의 정권 수립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한 부분도 계급투쟁, 특히 친일파 청산이다.

북조선임시인민위는 수립 직후인 3월 7일 친일파 척결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친일파, 민족반역자에 대한 규정’이 발표되기 하루 전 시행된 토지개혁도 지주계급 타파가 목적이어서 토지개혁과 친일파 청산은 계급투쟁이란 면에서 맥을 같이하고 있다.

북한은 이 결정을 “조국 광복 직후 독재 대상으로서 친일파, 민족반역자에 대한 징표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 문헌”이라며 “복잡한 계급투쟁의 환경 속에서 일제에게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복무한 친일파나 민족반역자와 일제의 강박에 의해 피동적으로 복무한 자들을 정확히 갈라서 처리하기 위해 채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자의적으로 일제에 협조한 사람 외에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남한에서 친일파 경력자로 분류된 무용가 최승희도 당시 처벌 없이 60년대까지 활동한 바 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한이 친일파 청산 심사과정에서 고위 간부가 아닌 공장 기술자나 예술인은 재심의를 거쳐 처벌하지 않았다”며 “친일파로 규정된 사람은 소련으로 가거나 노동현장에서 혁명화 과정을 겪었지만 북한 지역에 친일파로 분류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고, 처벌 대상은 월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광복 직후 한 차례 친일파 청산 작업 이후 북한 정권 내에서 권력투쟁이 이어진 50년대 중반까지도 친일 행적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북한은 친일파 인사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복권작업을 했다.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재심의를 통해 이광수 등은 복권됐고, 사라졌던 그들의 작품도 다시 평가받았다. 최승희 역시 나중에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되긴 했으나 재평가 후 북한의 국립묘지인 애국열사릉으로 이장됐다.

김근식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정권 수립 초기에는 정통성 확보를 위해 혁명성과 진보성이 강조됐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이후 예술성과 인간성을 재평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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