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가 본 하버마스 교수 인간과 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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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위르겐 하버마스는 67세의 노인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열정적이면서도 원숙한 부드러움을 보여줬다.그는『어떤 질문도 질문으로서 가치가 있다』며 매우 개방적이면서도 논쟁에서는 상대를압도하는 중후함을 지니고 있었다.
서울대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서남강좌」(위원장 차인석교수)초청으로 지난달 27일 아침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후 바쁜 1주일의 일정 속에서 그가 보인 모습이다.심지어 학생들의 공격적질문에 대해서도 한치의 빈틈없이 정확하게 답변하 고자 하는 성실함을 보인 그는 오히려 『한국인들의 지적이고 논쟁적 태도가 매우 인상적』이라고 감상을 피력하기도 했다.
20세기의 대표적 석학으로 평가받는 그는 상아탑에 갇힌 창백한 지식인이 아니라 현실과 철저하게 대결하고 개입해온 사상가임을 지근(至近)의 체취로 재확인할 수 있었다.
하버마스가 처음으로 역사의식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나치소년단의 일원이었던 그가 파시즘의 몰락으로 과거와의 처절한 단절을 경험하면서부터다.
이후 파시즘비판을 철학의 과제로 삼은 「프랑크푸르트학파(비판이론)」의 일원이 됐고 60년대초 실증주의 논쟁,70년대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과의 국가론 논쟁,80년대 포스트모던 논쟁 등 항상 지적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기를 양보하지 않았 다.
독일의 급속한 흡수통일을 반대하는 진보적 지성을 선도한 것도유명한 일.
이 과정에서 그는 파시즘의 위협을 비판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지성」의 회복을 끊임없이 촉구했다.이런 그의 사상이 우리에게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당시 금서였던 그의 책들을통해 이땅의 비판적 지성들은 그와 교감을 나 눌 수 있었다.
하버마스의 최근 사상은 근대화로 야기된 위기화 경향을 인류가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데 모아진다.이점은 3일 서울대 문화관 소강당에서 열린 「제5차 아시아.아프리카 철학자 대회」에서 발표한 그의 「근대성의 개념」에서도 잘 드러난다.
카를 마르크스.막스 베버.루카치.호르크하이머.아도로노 등 「근대적 이성비판」의 선구자들은 「이성=도구적.전략적 이성」이라는 협소한 「이성」개념에 묶여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근대적 이성을 「죽은 개」 취급해버림으로써 결국 어떤 합리적 대안이 부재(不在)한 비관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
하버마스 자신도 종교적 도그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이성이 현대의 새로운 폭력과 억압을 낳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시민사회에서의 이성적이고 합리적 토론을 통해 치유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그는 선구적인 이성비판론자들이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명백하게 구별된다.
하버마스는 「인간지성에 의한 합의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이성개념을 제시함으로써 현대문명의 새로운 전망을 찾는다.
강연과 토론에서도 자연히 이같은 핵심적 주장이 쟁점으로 등장했다.▶남.북대립,집단.지역간의 갈등을 치유하는데 합리적 토론이 과연 얼마나 유효한가▶토론이 「상호이해」보다 「갈등증폭」을가져오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 점이 대두됐다.하지만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어떤 불신과 불리한 조건에서도사회통합을 향한 합리적 토론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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