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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01년 중학2년생 K군의 하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서기 2001년 어느날 중학2년생 K모(14)군은 매주 목요일로 정해진 재택수업중이다.계속된 단말기 수업에 피곤함을 느낀그는 잠시 요령을 피우기 시작했다.예전 상황에 비유하자면 담당교사 몰래 딴전을 피우는 셈이었다.
K군은 일단 전자우편을 조회했다.이틀전 미국의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이 와 있었다.비록 서투른 영어로라도 이렇게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은 네티즌임을 확인하는 방편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다시 K군은 인터네트 가상공원 산책에 나섰다.지구촌어디에선가 사이버공간으로 빠져나온 여학생이라도 만날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이번엔 허탕이었다.운수좋은 날이면 간혹 공원 벤치에 앉아 여학생과 채팅을 즐긴 적도 있는 터였다.
하기야 지금 시간이라도 사이버 록카페에 들어서면 현란한 조명과 음악 아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맥주와 담배를 즐기고 있을 건뻔했다.소위 불량청소년 네티즌들이 모여 「광란의 대낮」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인터네트 순찰선생도 등장 했다.
실제 가상교실 수업은 환상적이다.파라마운트의 멀티미디어 CD롬 「아마조니아」는 아이들을 열대우림 지역으로 안내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카타」대화형 백과사전과 맥그로힐의 멀티미디어 백과사전은 고대유적.야생동물의 스틸사진.비디오.음향 을 안방으로바로 쏟아냈다.그리고 주 3회 실시되는 인터네트 원격강의도 학생들의 시선을 묶어놓기에 손색없었다.
K군 어머니는 막 아동복 디자인 일거리를 완성해 컴퓨터로 본사전송을 끝냈다.물론 파트타임 재택근무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었다.이후 그는 전자쇼핑몰을 잠시 기웃거리다가 세트톱박스로 돌아앉아 리모컨을 매만졌다.채널을 바꾸기 위해 사용 되던 그것은이제 프로그램과 메뉴를 불러내는 수단으로 변해 있었다.생활정보.주문형비디오.홈쇼핑이 차례로 화면에 떠올랐다.이름하여 쌍방향TV(I-TV).K군 역시 I-TV를 통해 게임을 즐기기 일쑤였다. 이번엔 K군의 외출.그는 낡은 무선호출기를 챙겨 넣었다.그때마다 K군의 짜증은 더했다.몇몇 친구들 사이엔 벌써 애플.샤프사 공동개발제품 「뉴턴」,즉 개인휴대통신(PDA)단말기가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K군은 전송속도와 기능이 훨 씬 뛰어난 AT&T의 가칭 「EO-2」단말기를 사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게 고민이다.
그것은 손바닥에 잡힌다는 뜻으로 일명 플립톱(flip-top)이라 불렸다.그 단말기 하나로 언제.어디서건 메시지의 송수신은 물론 학습.스포츠.오락정보 등을 어느 때 어디에서나 받아볼수 있으니 인기를 더 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교사들은 인간성 상실을 구실로 본격적인 정보화 교육의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따지고 보면 그들 스스로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상황을뒤늦게 알아차린 교육당국은 전국 교사를 대상으 로 정보화 재교육을 하기 시작했고 인터네트의 필수과목 지정과 아울러 2002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해당과목 점수를 반영키로 결정했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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