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돈·헛돈에 허접한 유물 ‘짝퉁 창고’ 지자체 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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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도 수원역사박물관의 유물 구매 업무를 맡은 수원시 공무원 A씨 등 3명은 2005년 알고 지내던 서예 작품 수집가 B씨에게서 서예와 그림 2880여 점을 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수원시는 유물을 구입할 때 매입 공고를 낸 뒤 전문가로 구성된 유물선정평가위원회를 거치도록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A씨 등은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B씨의 유물 2881점을 7억5000여만원에 사줬다. 유물선정평가위원회를 거친 것처럼 허위 문서까지 작성했다. 감사원이 유물 중 구매 가격이 100만원 이상인 228점을 전문가에게 감정한 결과 64점이 위작이나 모방품으로 판명됐다. 구입가만 9500만원에 이른다. 중국작가 곽밀약의 서예작품과 정약용 낙관 모음, 흥선대원군 그림도 들어 있었다.

#2 해남군 문화재담당 공무원 C씨는 2003년 공룡박물관에 전시할 공룡 화석을 구매하면서 특정 업체와 사실상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업체로부터 75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았다. 납품된 공룡 화석 가격은 16억원이 넘었다. 감사원 확인 결과 화석은 계약 기준에도 못 미칠 정도로 품질이 나빴다. 감사원은 해당 공무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감사원은 27개 기초자치단체에서 건립 또는 운영 중인 테마박물관 감사 결과를 13일 공개했다.

수원시가 역사박물관 전시를 위해 B씨에게서 구입한 작품 중 구매가 100만원 미만 유물 가운데 96점을 뽑아 재감정한 결과도 모두 가짜였다. 봉니(고대 중국에서 문서를 묶을 때 쓰던 진흙덩어리) 94점, 중국 서예가 양계초의 작품 2점 등이다.

감사원은 “공무원 A씨 등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매입했다가 위작으로 판명돼 전시나 소장 가치가 없는 유물이 최소 160점에 구매가는 1억600여만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수원역사박물관은 올 4월 완공됐으며 10월 개관 예정이다. 문제가 된 유물 160점은 현재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남양주시도 건립 중인 ‘남양주시 향토 사료관’에 전시·소장할 도자기 등 민속유물 40점(구입가 4000여만원)을 전문가 감정평가 없이 견적서만 받고 구입했다. 이를 감사원이 감정평가한 결과 삼국시대 마형토제품 등 4점(구입가 1298만원)이 위작으로 드러났다.

전북 익산시가 마한관에 전시할 목적으로 구입한 유물 모형 56점도 마찬가지였다. 4000여만원을 들여 산 유물 모형을 감정한 결과 규격이 미흡한 데다 중국산 복제품까지 끼어 있었다.

◇정부는 박물관 건립 현황도 몰라=감사원은 “박물관 관리 주무 부처인 옛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박물관 설립 현황 통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현재 전국에서 개관 또는 운영 중인 공립박물관이 237개인데도 134개로만 파악했다는 것이다. 건립 중인 공립박물관도 108개인데 35개만 통계에 잡았다.

그 결과 1998년 ‘새 문화관광정책’에서 설정한 2011년까지의 박물관 확충 목표치인 500개를 2004년에 달성했고, 지난해 10월 현재 박물관 수가 840개라는 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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