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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어머니 땀 밴 땅을 일구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올해 여든 여섯이신 나의 어머니는 지난해 5월 밭에서 완두콩을 심다 호미를 쥔채 쓰러지셨다.
갑자기 왼쪽 뇌에 출혈을 일으켜 의식불명이 된 어머니는 7시간의 뇌수술을 받았지만 깨어나지 못하고 인공호흡기 신세를 지며한동안 누워계셨다.온식구들의 간절한 기도때문인지,적절한 응급처치와 첨단의학 덕분인지 어머니는 쓰러지신지 보름 이 지나 기적적으로 눈을 뜨셨다.
하지만 쓰러지기 전의 옛 기억들은 전혀 없으시고 언어기능도 마비된 채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화장실 출입.식사도 못하시는 상태로 퇴원하게 됐다.
퇴원하시던 날 어머니를 맡아 돌봐주던 신경외과 선생님은 『이렇게 살아 퇴원하시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하라』며 가족들을 위로해 주셨다.
집에 돌아오셨지만 농사를 전혀 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언제나 누워만 계셔 농부의 아내로 40여년동안 흙만을 밟아오신 당신의 땅은 누구하나 돌보는 사람없이 황폐한 땅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나는 어머니가 농사지은 곡식과 제철따라 자라는 갖가지채소들을 손쉽게 가져다 먹곤 했는데 어머니가 거동을 못하신 뒤로는 당장 채소는 물론이려니와 쌀.고추장.된장등도 모두 가게에서 사먹지 않으면 안됐다.
늘 이런 것 하나라도 더 주지못해 성화시던 어머니는 당신의 사랑을 머금어 기름진 채소를 길러내던 빈 땅을 멀거니 바라다만보신다. 나는 푸성귀.장류들을 하나 하나 사들일 때마다 땅에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을 실감한다.
가꾸고 돌보지 않은 땅은 그 무엇도 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새삼 깨닫는다.
40여년이나 땅을 돌봐온 어머니의 건강처럼 말없는 땅도 건강을 잃어 황폐해지고 있다.
나는 올봄 어머니의 땅을 직접 일궈보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의 피와 땀이 서린 당신의 땅을 내가 대신 호미질해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 직접 농사지은 채소와 곡식들을 누워계신 어머니의 밥상에 정성껏 올려놓고 싶다.
서툰 내 호미질에 다시 살아나는 어머니의 땅에서 자란 음식들을 드시고 어머니의 건강도 차츰 회복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송순녀 전북익산시부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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