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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이 백비홍이었다면 ? 색으로 중국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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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베이징에 간다면 날이 맑은 날 해질 무렵 고궁(古宮) 바로 뒤 징산(景山) 공원에 올라 낙조를 받아 빛나는 고궁 지붕의 황금빛 기왓장을 감상해 보라. 그것은 중국이라는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누런색 기왓장이야말로 중국을 이루는 코드에 얹힌 산물이다.

황토지(黃土地)와 황하(黃河)로부터 황해(黃海)를 지나 ‘뻘’ 섞인 황해 바닷물을 먹고 자라는 생선 황어(黃魚·조기) 등 자연의 누런색이 그러하며, 거기서 인문으로 파생되면 황제(皇帝)가 입는 곤룡포의 누런색이 된다. 곤룡포에 새겨진 황룡은 ‘뻘 흙’이 절반 넘게 섞인 황하 강물이 서녘으로 떨어지는 누런 햇빛을 받아 꿈틀거리며 흐르는 모습과 오버랩되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런 점에서 황비홍도 마찬가지다. 황비홍이 만일 백비홍이었다면 그는 중국 인민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캐릭터가 될 수 없었을 게다. 이 황색에 대한 색감이야말로 중국인의 내면에 흐르는 에스닉 컬러(민족적 색채)다. 황색은 중국인들이 토덕(土德, 땅의 덕택)을 처음 보았다며 자신들의 시조인 황제(黃帝)에게 접속하는 코드이기도 하다.

중국의 색감이 구성하는 이런 전통의 이미저리를 날카롭게 포착한 것이 바로 장이머우다. 베이징영화학원에 늦깎이로 입학하기 전 피를 팔아 산 카메라로 영화공부를 시작한 장이머우는 홍색을 자기 컬러로 삼았다. ‘홍등’과 ‘홍고량’ 등 붉은 색 계열로 자신의 화면을 물들임으로써 서방으로부터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붉은 색조는 ‘삼국지’ 관우의 대춧빛 얼굴빛깔(棗紅色), 중국의 국채(國菜)인 베이징 카오야의 조홍색, 춘절날 세뱃돈을 담은 붉은 봉투, 중화요리집의 붉은 페인트를 지나 ‘중국의 붉은 별’의 주인공인 마오쩌둥의 홍색으로, 다시 오성홍기의 홍색으로 이어지면서 중국의 국색(國色)이 된다.


장이머우가 색으로 생색을 내는 것은 경극을 비롯한 중국 전통극의 색, 혹은 청자와 백자의 은은한 컬러들, 곧 무한한 색의 창고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장이머우는 베이징 올림픽의 개·폐막식 총연출을 맡으면서 “영화 몇 편을 못 만들더라도, 아니 영화 전부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왜냐. 베이징 올림픽이야말로 중국의 얼굴(臉面)이므로. 그런데 그 중국의 얼굴은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표현대로의 ‘생얼’이 아니라, 경극의 ‘리엔푸((臉譜)’에서처럼 짙은 화장을 한 얼굴이다. 이 화장한 얼굴색을 모르면 중국은 마냥 ‘죽의 장막’ 저편에 있는, 알 수 없는 실체가 되고 말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을 인문 올림픽으로 들여다보려면 지난해 인민대회당 옆에 지어진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에 가 보라. 거기 가면 이런 중국의 색을 만끽할 수 있다. 중국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매화상 수상작을 모은 ‘매화부’ 가운데 하나인 ‘양축(梁祝)’은 중국에서 영화와 전통극으로 제일 많이 리바이벌된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거기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축영대(祝英臺)의 복숭앗빛이 감도는 그 화장, 하늘거리는 버들가지와 어울려 교태 어린 음색으로 그녀가 토하는 소리의 색깔은 또 얼마만큼 섹시한가를 보라. ‘양축’을 보고도 느끼는 바 없다면 목석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한 가지 더. 국가대극원이 하필이면 왜 우리나라 국회에 해당되는 인민대회당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인민대회당에서 만찬을 마친 해외의 ‘링다오(領導·지도급 인사)’들에게 중국의 ‘본색’인 문예물을 감상하게 하기 위한 배치라는 ‘점’. 중국의 이른바 ‘링다오’들은 문예를 모르면 이류 취급을 받기 십상이라는 ‘점’. 품격을 갖춘 자리에서 시 한 수 읊지 못하거나 명문장 한 구절쯤 인용할 줄 모르면 어딘가 한 군데 빠진 것으로 평판받기 십상이라는 ‘점’. 이들 ‘점’을 잇따라 이으면 중국의 인문이 밤하늘의 북두칠성 별자리처럼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중하 교수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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