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지상파방송 유료화 아직 이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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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다매체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에도 대다수 국민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뉴스를 시청하고 드라마를 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TV를 켰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KBS나 MBC, SBS 등 지상파 방송국 프로그램 채널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자. 하루이틀은 그냥 참거나 기다려도 이러한 상황이 일주일 이상 계속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정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최근 시청자들에게 이들 프로그램을 전달해 주는 케이블방송사에 공문을 보내 “지상파 방송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디지털케이블TV의 광고 및 마케팅 행위를 전면 중단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케이블TV를 통한 지상파방송 서비스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일까. 공익을 위해 기능하는 방송의 시대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케이블이나 위성방송·DMB·IPTV 등 다양한 미디어가 공존함에 따라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데다 이들 미디어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엄청난 설치 및 운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방송 프로그램에 국한되긴 하지만 케이블방송사에 저작권료(재송신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고 나름대로의 정당성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방송의 이러한 요구가 과연 국민적 공감대나 사회적 합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는 필요할 것 같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현재의 경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익을 극대화해야 하지만, 지상파 방송의 지향점은 공익성 구현과 수용자 복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행해야 할 것이 바로 보편적 서비스 제공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KBS 같은 공영방송은 난시청 해소 등 최소한의 보편적 서비스 구현을 이행하는 데 소홀했다. 오히려 전 국민의 70% 이상이 케이블TV를 통해 지상파 방송을 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케이블TV가 그 역할을 해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케이블방송이 난시청 해소 역할을 대행함으로써 지상파방송의 안정적 서비스가 가능했고, 가시청 가구의 확대에 따른 광고매출의 증가도 있었다. 이런 자금으로 안정되게 콘텐트를 제작해 경쟁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케이블TV 역시 13년이란 짧은 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지상파방송사들의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은 결과임을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누가 더 잘 했고 못했는지를 따지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지상파방송이 짊어져 왔던 공익성 구현이란 무거운 짐을 케이블TV들이 함께 나누면서 경쟁의 시대에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세계적 추세고 우리나라 역시 2012년 이후부터는 전면적인 디지털방송이 실시된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디지털화가 지상파방송뿐 아니라 케이블방송에까지 균형적으로 이루어져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콘텐트에 대한 재송신료 지급을 주장한 시점이 아직은 최적기가 아니라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디지털TV 수상기 보급률은 30%대 수준이고, 케이블TV의 디지털화는 지상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어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2012년 이후에 검토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지상파방송의 유료화가 이뤄지면 케이블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투자는 늦춰지고, 이에 따라 케이블TV 요금의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상파방송을 유료화할 경우 쟁점화될 수 있는 재송신료의 적정 수준이나 광고수입의 할당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공론 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논의 역시 관계자들이 시청자 복지가 최우선임을 마음에 새기고 진행해야 한다.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