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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에서 영웅으로, 장이머우 30년이 중국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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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한 것은 중국이 낳은 세계적 감독 장이머우였다. 개막식 다음날인 9일 그는 "영화 한편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더 힘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장이머우의 영화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개막식은 사상 최대 규모의 중화 블록버스터였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8일 밤 3시간30분 동안 펼쳐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마지막 순간, 최종 성화봉송 주자 리닝(李寧·체조선수 출신)은 와이어에 매달려 새처럼 밤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곤 올림픽 주경기장인 냐오차오(鳥巢·새 둥지)의 벽을 마치 허공을 달리듯 한 바퀴 돌았다. 앞서 장이머우(張藝謀·57·사진)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예술공연에선 둔황 벽화에서 따온 고대 선녀, 개막식 주제가를 부른 9살 소녀도 와이어의 힘을 빌려 우아하게 하늘을 날았다. 그 뒤 등장한 거대한 지구본 위에서는 수십 명의 청년이 와이어에 의지해 중력을 벗어난 360도 무용을 보여줬다. 무협 블록버스터로 중국 영화계 간판이 된 장이머우다운 발상이었다.

이날 예술공연은 그가 이제껏 만든 블록버스터 중에서 으뜸가는 규모였다. 인건비를 뺀 예산만 1000억원에 이른다. 장이머우가 최근작 ‘황후화’를 만드는 데 중국 영화사상 최대 제작비(450억원)를 썼다고 하지만 그 두 배를 넘는 액수다. 이 영화에서 장은 1000여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했다. 그러나 이날 개막식에선 첫 장면부터 2008명의 타악기 연주자를 동원해 카운트다운 동작을 흡사 브라운관의 화소처럼 정교하게 조직해 보여줬다. 자신의 영화에서 즐겨 쓰던 빨강·노랑·파랑 같은 강렬한 원색에 더해 개막식에서는 수묵화의 흑백이나 미래적 형광 컬러까지 사용해 한층 원숙한 경지를 과시했다. 9일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장이머우는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중국에서 장이머우만큼 집단공연예술 감각을 갖춘 인물도 찾기 힘들다. 장은 첫 무협액션 대작 ‘영웅’(2002년)으로 중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수입을 올린 데 이어 ‘황후화’(2006년)로 신기록을 다시 썼다. 국보급 영화감독의 역량을 그는 예술공연 무대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하지만 장이 지나치게 영웅주의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 대중문화를 전공한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마지막 성화 주자’인 리닝을 초인적 영웅으로 묘사하고 한·당(漢·唐)의 장건·정화 같은 고대 영웅을 부각시켰는데 이는 중화주의와 전체주의에 빠진 장이머우의 사고 방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의 최근 영화에서 쿠데타·내란 장면이 몇 차례 나오지만 한 번도 정권을 뒤엎지 못하는 게 이를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장이머우를 떠올리면 엄청난 변화다.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 장교 출신의 아버지를 둔 그는 문화혁명 때 큰 시련을 겪었다. 학교 대신 농촌과 방직공장 등에서 8년간 일하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문화혁명이 끝나고 78년 베이징영화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동기생 장이머우·천카이거 등은 졸업 이후 교조적인 사회주의 영화를 배격한 채 농촌을 배경으로 사회 모순과 민중의 고단한 삶을 묘사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천의 데뷔작이자 장이 촬영감독을 맡은 ‘황토지’는 신호탄이었다. 장의 첫 연출작 ‘붉은 수수밭’은 양조장 주인에게 팔려가듯 결혼한 여주인공을 통해 봉건적 억압과 일제 침략 시대를 헤쳐가는 민중의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했다. 88년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돼 최고영예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이들의 영화는 ‘제5세대’라 불리며 새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붉은 수수밭’ ‘홍등’의 궁리는 연인 관계를 겸한 장이머우의 영화에서 단골 주연을 맡으며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했다.

‘붉은 수수밭’ ‘홍등’의 붉은색, ‘국두’(90년)의 파란색, ‘연인’(2004년)의 녹색 등 강렬한 색채 묘사는 장이머우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런 감각은 ‘영웅’에서 인물·상황을 각기 다른 원색으로 상징하는 절묘한 기법으로 이어졌다. 최근작 ‘황후화’에선 황제의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황금색을 활용했다.

장이머우 “정치화된 서구 시각 유치하다”99년 칸 영화제 “체제선전용” 비판에 출품 철회

장이머우의 초기작들은 중국 내에서 상영허가를 받지 못했다.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에 묘사된 매매혼·가족살해·근친상간 등은 사회주의 윤리규범에 어긋나는 불온한 요소로 비판받았다. 가족 3대를 통해 일제시대부터 문화혁명까지의 격변기를 담아낸 영화 ‘인생’(94년) 역시 국내에선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물질만능과 개인주의의 새로운 풍조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불안을 그려낸 영화 ‘침착하라’(97년)는 검열에 걸려 재촬영을 한 뒤에야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됐다. 사실상 ‘검열대상 1호’ 영화감독이었다.

그러나 장이머우는 90년대 말부터 친(親)정부 성향으로 돌아섰다. 그러면서 상업주의를 우선하는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변신하는 길을 택했다. ‘영웅’은 할리우드 영화를 제치고 중국 내 흥행수입 1위를 차지하고 미국 본토의 흥행에도 성공했다.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에 자극받아 중국적 소재에다 무협영화 기법을 택한 게 먹힌 것이다. 반면 과거의 장이머우를 기억하는 이들은 ‘영웅’에 배반감을 느낀다.

진시황의 악행을 덮어주면서 천하통일의 업적을 긍정하는 스토리야말로 장이머우의 변화, 즉 개인보다 체제, 변혁보다 안정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기미는 ‘책상서랍 속의 동화’(99년)에서 드러났다. 시골학교의 대리교사를 맡게 된 10대 소녀가 도시로 떠난 가출 학생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는 줄거리다. 당시 칸영화제에서 “예술적이지만 선전용”이라는 비평이 나오자, 장은 영화제 출품을 철회했다. 장은 칸에 보내는 서한을 중국 언론에 공개하면서 “서구가 정치화된 해석 방식만 고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반정부 영화 아니면 정부대변 선전물이라는 식의 관점이 편향적이고 유치하다”고 주장했다. 데뷔 초기 서구 영화계의 격려와 찬탄을 받았던 장으로선 본격적인 변신을 선언하는 발언이었다. 이는 ‘영웅’ ‘황후화’로 현실화됐다.

그는 이제 민중보다 영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영웅’의 진시황이 민족 영웅이라면, ‘책상서랍 속의 동화’의 소녀 교사는 사회주의 소영웅과 흡사하다.

개막식에 앞서 장은 “우리가 보여주려는 것은 ‘우리가 누구’라는 것과 ‘우리와 당신들은 한 가족’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개막식 공연에서 ‘우리가 누구’라는 대목을 중화(中華)의 당당한 자부심으로 풀어 넣었다. 또 13억 중국인이 한솥밥을 먹는 한 가족이라는 국가통합 이념을 호소했다. 장이머우로선 지난 10년 간의 삶과 고민을 집대성한 결론이 아닐까.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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