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들 챙기는 건 종교가 사회에 할 일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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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19일 오후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의 제주원광요양원에는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봄 가뭄에 목탔던 대지도 오랜만에 내린 비로 촉촉해졌다. 요양원에는 152명의 노인이 서로 어깨를 기대며 살고 있다. 70여명의 요양원 직원이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정성껏 보살폈다.

요양원에서 자동차로 한시간여 떨어진 성산원광어린이집. 성산포 일출봉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이곳에선 꼬마 100여명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어린이집 또한 요양원과 마찬가지로 무료로 운영된다. 원불교 복지사업의 한 단면이다. 제주도에만 이런 어린이집이 11곳이 있다.

원불교 이혜정(李慧定.67.법호 冠陀圓) 교정원장은 올해 역점 사업으로 사회복지를 꼽았다. 지난해 11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행정수반인 교정원장(조계종으로 치면 총무원장)에 오른 그는 취임 후 곧바로 복지기관을 찾기도 했다. "복지시설에 온 사람들은 어느 면으로나 외롭습니다. 그들을 잘 챙기는 것이 종교가 사회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종교가 사회에서 입은 은혜를 갚는 것이죠. 노약자에게 따뜻한 정을 먼저 주는 게 종교가 아닐까요."

그는 '여성'의 장점을 언급했다. 마음 바탕에선 다를 수 없으나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덕성이 분열된 우리 사회를 평화로운 세계로 봉합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적으로 복지시설을 늘려갈 계획입니다. 중앙에 집중된 조직도 지방으로 이양할 생각이에요. 원불교 13개 교구 중 아직 복지법인이 없는 경기.강원 등에도 따뜻한 손길이 미치도록 할 겁니다."

그는 지역과 함께 하는 종교를 강조했다. 개교(대각개교절) 89주년(28일)을 맞아 오는 24일 전북 익산시에서 열리는 '아하! 데이(Day)' 축제를 지렛대로 삼겠다고 했다. 익산시민 2만여명과 함께 흥겨운 잔치마당을 여는 것이다. 청소년 장기자랑.풍물패 놀이.가장행렬.대동놀이.불꽃놀이 등이 '당신은 희망입니다'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아하!'는 깨닫는 순간을 가리키는 의성어다.

"시민들과 한판 어울릴 작정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자신의 울타리 안에 갇힌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 축제는 그 경계를 허무는 자리입니다. 깨달음의 기쁨을 함께 나눠야죠."

그는 한국 사회의 키워드로 '마음공부'를 들었다. 무엇보다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원래 마음자리에는 미워하는 마음도, 좋아하는 마음도 없는데 눈앞의 이익에 눈먼 사람들이 상대를 원망.질투하는 마음으로 오염됐다는 것이다. 특히 총선 전후 이념.세대 차이로 산산이 흩어진 한국 사회를 치유하려면 타인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세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제주=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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