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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사생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호 07면

천재 이야기를 다룬 TV 프로를 잇따라 보게 됐다. MBC ‘네버엔딩 스토리-사라 장’과 ‘서태지 컴백 스페셜’. 아나운서 오상진과 사라 장, 영화배우 이준기와 서태지가 짝을 이뤄 데이트하는 형식이 대중적이면서도 신선했다. 천재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항상 흥미롭다. 그동안 사생활 노출이 드물던 두 사람이었기에 더 그랬다. 천재들에 대한 동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두 사람이 지닌 진한 매력 덕이 컸다. ‘천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엿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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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겉으론 판이하게 다른 성격이다. 외향적인 사라 장은 늘 파티를 즐기고 웃음이 넘쳐 나며, 자신이 지내는 집을 공개하거나 음식을 만들며 소탈한 천재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특유의 명랑함으로 같이 있는 사람까지 햇살이 쨍 내리쬐는 느낌을 받게 했다. 하늘이 내린 재능에 그림 같은 화려한 일상까지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그녀의 인생에는 시샘하고 트집 잡고 싶은 마음조차 무력화해 버리는 유쾌함이 있었다.

서태지는 정반대로 은둔·폐쇄형 천재의 정형이라고나 할까. 수줍고 은밀해 보이는 그는 자신만의 왕국을 단단히 세워 놓고 그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왕자 같다. 어디에 사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새침한 그는,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견고하게 빚어낸 서정적이면서도 격렬한 음률로 사람들의 가슴을 뻥 뚫어 버리는 힘이 있다.

어두운 밤 숲 속에서 펼쳐진 이준기와의 인터뷰는 그의 은밀한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시청자들의 마음과 딱 맞아떨어지는 분위기였다. 도도하게만 보였던 그가 “아버지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서 뽀얀 김 속에서 바나나 우유를 먹던” 추억을 되살리고 싶다는 소원을 말할 때 마치 커다란 비밀이라도 알아낸 듯 반가웠다.

한쪽은 하늘이 내린 어린 천재로 시작했고, 다른 한쪽은 음악에 미쳐 비정상의 궤도를 달리다가 20대 초반에 천재로 다시 태어났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한때의 천재가 아니라 십수년이 지난 지금, 거장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원동력은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하고 예민한 눈과 자신의 일에 대한 몰입이다. 두 사람은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같은 단순함과 순박함으로 가득 차 있다.

가족이 늘 그립고, 바쁘고 외로운 삶에 대한 연민도 있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 돌변하는 그들의 눈빛을 보라. 연주하는 사라 장은 날렵하고 매몰차고 예리하게 음악을 요리해 나간다. 새침하고 우울해 보이는 서태지는 무서운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폭발한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기쁨이 그들의 얼굴에 있다.

비밀의 열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느냐’인 것 같다. 그냥 ‘하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미치도록 좋은’, 거기 집착하고 광기마저 뿜어낼 수 있는 일 말이다. 서태지처럼 일주일 동안 세수를 안 하고 7~8개월을 밖에 안 나가도 괜찮게 만드는 그런 일, 사라 장처럼 1년에 며칠밖에 집에 못 들어가고 녹초가 되더라도 박수만 받으면 모든 걸 잊게 만드는 그런 일 말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것이며, 아이를 천재로 키우고 싶은 사람들은 아이가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줄 일이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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