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사장 찬·반 측 안팎서 격렬한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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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오전 7시, 경찰은 KBS 본관과 신관 건물을 전경버스 50여 대를 동원해 둘러쌌다. 주변에 총 3000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KBS 청원경찰은 출입문 앞에 서서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한 뒤 직원들을 들여보냈다. KBS 청사 밖에서는 ‘방송장악 네티즌 탄압저지 범국민행동(이하 범국민행동)’ 소속 회원 50여 명이 “KBS 이사회의 결정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오전 8시15분 KBS 유재천 이사장을 포함해 이사 6명이 이사회가 열린 본관 3층 제1회의실에 입장했다. 청원경찰 50여 명이 이들을 둘러싸며 호위를 했다. 유 이사장은 이사회 시작 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청원경찰의 보호를 요청했다. KBS 노조원 50여 명은 회의실 앞에서 “이사회는 자폭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사들의 입장을 막았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노조원들은 “이사회가 문제인데 KBS 직원을 왜 막느냐”며 항의했지만 이사회장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 범국민행동’ 소속 회원 100여 명은 오전 9시부터 KBS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사회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감사원이 허구와 왜곡투성이인 감사 결과를 토대로 정 사장의 해임을 요구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전경들을 사이에 두고 다른 편엔 보수단체들의 ‘맞불집회’가 열렸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고엽제전우회 등으로 구성된 ‘KBS 공영방송 회복 투쟁 추진 범국민연대’ 회원 50여 명은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오전 9시45분쯤 노조원 40여 명이 본관 3층 텔레비전 부조종실 비상계단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청원경찰이 가로막고 있던 회의실 3m 밖 저지선이 뚫리기 시작했다. 5분 후 경찰 병력이 KBS 본관으로 투입됐다. 사복경찰 50여 명이 본관 3층으로 진입하면서 회의장 앞은 이를 막는 노조원들과 경찰들이 뒤엉켰다. 일부는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취재가 제한됐던 기자 50여 명도 몰려 들어왔다. KBS 이사회는 출입기자와 방송3사, YTN, OBS 등 일부 방송사의 취재기자를 제외한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했었다. 회의장 앞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0시10분쯤 남윤인순 이사 등 이사 4명이 회의실에 입장했다. 유 이사장은 “의결 정족수인 과반수를 넘었다”며 개회를 선언했다. 10시50분쯤 남윤인순 이사가 “경찰력 때문에 이사회가 되겠느냐”며 이사회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기욱·이지영·박동영 이사도 20분 간격으로 차례로 이사회장을 빠져나왔다. 이들은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에 반대 입장을 가진 이사들이다.

12시35분, KBS 이사회는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유 이사장을 비롯해 6명의 이사가 참석해 모두 찬성했다. 회의 시작 후 2시간2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회의를 마친 유 이사장 등 이사 6명은 사복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이사회장을 빠져나왔다. 일부 노조원들은 “유재천 XX” “당신들은 역사의 죄인”이라며 이사들을 향해 달려들기도 했다.

KBS 노조는 오후 3시 KBS 본사 시청자광장에서 집행부 10명이 전원 삭발을 한 후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들은 청와대로 이동해 항의성명을 발표하고 5시30분쯤 집회를 마무리했다. 전날 KBS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인 혐의(집시법 위반)로 경찰에 입건된 24명은 8일 오후 전원 풀려났다. 범국민행동은 8일에도 회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7시부터 여의도 KBS 본사 앞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갔다.

글=김진경·이현택 기자, 이경진 인턴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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