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공매도 폭탄’ 주의보 … 글로벌 시장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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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 월가가 다시 긴장하고 있다. 금융사들의 부실자산 상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달 21일부터 19개 금융사 주식에 대해 실시해온 공매도 제한 조치가 12일 풀리기 때문이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되사서 갚는 것이다. 주가가 내리면 이익이고, 오르면 손해다. 따라서 공매도 제한을 풀면 주가 하락으로 돈을 벌려는 투자자들이 나타나 주가 하락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SEC는 제도 실시에 앞서 공매도를 금융주 급락의 원인으로 꼽은 바 있다. “일부 공매도 세력이 차익을 챙기려 사정이 어려운 금융사에 대해 악성 루머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월가에선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무너진 것도 공매도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SEC는 공매도 제한 조치를 당초 지난달 말까지만 취할 계획이었지만 금융시장의 혼란이 계속되자 12일까지 연장했다.

일반적으로 공매도를 하려면 사전에 주식을 빌려와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까지 주식 대여자와 사전 계약없이 일단 ‘팔자’ 주문을 내고 나중에 주식을 구해다 갚을 수 있었다. 이른바 ‘네이키드 숏 셀링(naked short selling)’이다. SEC가 주요 금융주에 대해 한시적으로 금지한 것이 바로 이 방식이다.


SEC의 조치는 금융주 하락을 막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행 뒤 7일(현지시간)까지 19개 금융주 가운데 8개가 올랐다. 심각한 자금난을 겪은 양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회사인 패니메이(-29.6%)와 프레디맥(-32.7%)을 제외하면 다른 종목의 낙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미국 금융주에 투자하는 국내 펀드도 최근 한 달간 모처럼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공매도 제한이 풀리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NH투자증권 김형렬 연구위원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뉴욕 증시의 공매도 잔고가 180억 주를 넘어섰다”며 “단기적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증시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뉴욕 증시의 ‘공매도 심리도’는 80% 수준이다. 최근 10개월 가운데 8개월 동안 공매도 액수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금융사 부실도 쉽게 끝날 분위기가 아니다. 자산규모 세계 1위 보험사인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은 6일(현지시간) 110억 달러의 부실자산 상각에 따라 2분기에 53억6000만 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발표했다. 3분기 연속 적자다. 씨티그룹은 개인투자자·중소기업 등에 팔았던 경매방식채권(ARS) 75억 달러어치를 되사주기로 했다.

뉴욕주 검찰이 “사전에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기소하려 하자 울며 겨자먹기로 택한 방법이다.

현재 미국 금융사들은 공매도 제한을 풀지 말고 되레 확대해 달라는 입장이다. 미국은행연합(ABA)의 새러 밀러 선임부회장은 “은행 고객들이 종종 은행의 주가 하락과 은행 예금의 안전성을 같은 것으로 착각한다”며 “SEC는 공매도 남용을 중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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