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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번째 생일날 남편 축하 꽃다발 받자 반세기 묻어뒀던 눈물과 그리움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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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방북 이튿날인 지난달 26일엔 오전 5시에 잠이 깼다. 선잠을 잔 탓에 몸은 피곤했지만 오늘부터 남편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로 맘이 설렜다. 물론 내심 걱정도 됐다. 47년간의 긴 시간적 공백 때문에 아직 서로 어색함을 숨길 수는 없었다. 다소 내성적인 맏아들 페터 현철은 그렇다 치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쾌활한 우베 역시 얼굴에 긴장된 표정이 뚜렷했다.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북한 적십자사(조선적십자회) 직원을 기다렸다.

우리의 안내를 맡은 적십자사 직원은 이번 상봉에 무척이나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것 같았다. 특히 북한에 체류하는 기간 내내 남편과의 상봉을 맘껏 자유롭게 누릴 수 있도록 허락했다.

레나테 홍 할머니가 홍옥근씨와 맏딸 광희씨에게 독일에서 가져온 가족 사진첩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이날 오전 9시40분쯤 숙소를 나와 대기 중인 미니버스를 타고는 남편이 묵고 있는 창광산 여관으로 향했다. 창가에 바짝 붙어 차창 바깥으로 펼쳐지는 거리풍경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토요일 오전의 평양 거리는 한산했다. 공기는 상쾌했고 차도 많지 않아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쾌적했다. 문수거리를 지나 주체사상탑이 가까이 보이는 옥류교를 통해 대동강을 건넜다. 만수대 의사당, 보통문, 인민문화궁전 등 뉴스를 통해 봐오던 건물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아, 드디어 평양에 왔구나.” 꿈만 같은 현실이 조금씩 실감 나기 시작했다.

호텔에선 남편 홍옥근씨가 딸 광희와 함께 아침 일찍부터 우리를 기다린 표정이었다. 두 아들 우베와 현철이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잔꾀를 냈다. 기념 사진을 찍겠다며 “엄마와 아빠가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해 달라” 고 졸랐다. 얼떨결에 남편과 얼싸안고 얼굴을 맞대게 됐다. 덕분에 서먹서먹하던 분위기가 거의 사라졌다. 남편이 재혼해서 얻은 맏딸 광희도 이복 오빠들인 현철·우베와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비록 말은 안 통했지만 손짓을 통해 항상 뭔가를 도와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남편을 위해 준비해 간 선물 꾸러미를 펼쳐 보였다. 화학 전공서적 2권, 고향인 독일 예나 관광 책자, 와이셔츠와 넥타이, 분말비타민 영양제, 초콜릿, 과자, 카메라, 두통약, 진통제, 양말 등등. 하나씩 펼쳐서 설명을 해 줄 때마다 남편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남편은 50여 년 전 유학생 시절 살았던 동독 예나의 기숙사 건물 사진을 보여주자 큰 감회에 젖은 듯했다.

나도 어제 처음 만나 호텔에서 헤어지기 전 남편에게서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그는 예쁜 보석반지와 검정색 블라우스를 건네주었다. 아마도 결혼 당시 유학생 신분이라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옷과 패물을 사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듯했다. ‘왜 새삼스레 반지를 내게 선물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비록 떨어져 살지만 우리가 예전에 부부로 맺은 인연을 앞으로도 계속 잊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이날 오후 내내 우리 일가족은 호텔 거실에 머물면서 서로 가족사진과 옛날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는 저녁에 대동강 외교단회관(외교관 클럽)에 가서 당구를 치며 즐겁게 놀았다. 남편은 이날 아주 서툰 솜씨에도 불구하고 아들 우베와 열심히 당구를 쳤다. 어린 시절 두 아들과 못 놀아 준 것이 미안해 이를 만회하려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방북 사흘째인 27일은 내 생애에 가장 특별한 날이었다. 71번째 내 생일을 애들 아버지와 함께 맞은 것이다. 이날 적십자사는 나를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야외로 피크닉을 나가 조촐하게 생일 잔치를 벌이기로 한 것이다. 아침에 남편은 호텔에서 꽃다발을 들고 나를 기다렸다. “생일 축하해”라며 그가 나를 얼싸안는 순간 코끝이 시려 왔다. 반세기 동안 가슴속에 묻어 뒀던 눈물과 그리움이 봄눈 녹듯 흘러내렸다.

정리=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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