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선택의 폭은 넓히는 것이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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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주 서울에선 교육감 선거가 있었다. 경쟁이냐 평등이냐라는 교육철학을 각각 바닥에 깔고 벌어진 치열한 대결에선 자율과 경쟁을 내세운 후보가 박빙의 차로 첫 서울시 직선 교육감으로 선출됐다.

결과가 말해주듯 교육수요에는 경중을 가르기 힘들 정도로 뚜렷한 두 가지 흐름이 있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율과 경쟁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수월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는 그룹과, 황폐해진 공교육 환경의 치유를 위해서는 평준화 교육이 오히려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는 그룹이다. 둘 다 교육 정상화를 말하면서도 이르는 길에 대한 생각엔 큰 간극이 있다.

이 나라 교육이 평준화 체제로 접어든 역사는 이미 오래다. 전면 재개편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미 일상화·체질화된 교육체계를 완전히 바꾼다는 일은 현실적으로 무망하다. 그렇다고 해서 ‘하향평준화’란 비아냥이 말해주듯, 평등의 이상만으로 글로벌 경쟁의 격랑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기존 체계 유지를 전제로 다양한 교육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학교들을 보다 쉽게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제한된 부분이나마 수요자의 선택권을 강화함으로써 교육 공급자의 경쟁을 부추기자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번 투표 결과는 팽팽하나마 그런 쪽의 의견에 보다 힘이 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런 의견이 공교육의 중요성, 공교육 수준의 전반적 향상을 원하는 의견을 배척하는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평등의 이상 때문에, 스스로 원하는 교육환경에서 배우고 싶다는 정당한 욕구와 현실적 수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보험제도 개편도 마찬가지다. 현행 국민의료보험은 세계적 수준에서 봐도 비교적 잘 운용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의료수가나 보험료율, 보장의 범위 등을 둘러싸고 많은 문제가 제기되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한쪽에서는 국가의 부담을 더욱 늘려 보장 수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선 국가 재정엔 한계가 있는 만큼 개인이 돈을 더 내서라도 원하는 만큼의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일단 쟁점화한 민영화를 포기하는 대신 현재의 공적 의료보험 체계를 2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론자들은 이런 현행 의료보험 체계의 2원화도 결국 의료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누차 지적되어온 대로 부담이 늘더라도 현행 체계에서는 미진할 수밖에 없는 고가의 치료나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의료수요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것이 공적 부문의 2원화가 됐든, 한 발 더 나아가 민영화의 부분적 도입이 됐든 제도로 뒷받침해줄 상당한 이유가 있는 현실적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교육제도건 의료보험이건 제도변화에 반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논리는 결과적으로 양극화를 부추기리란 것이다. 이는 차별화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기존의 것은 방기(放棄)될 것이란 예단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예단은 예단일 뿐 참이 아니다. 집이나 차에도 옵션이 있다. 기본형의 집이나 자동차가 기본적인 욕구나 성능을 충족시킬 것이라 믿는 것처럼, 별도의 옵션은 차별화된 욕구를 채우는 유용한 수단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교육제도나 의료보험에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 소비자의 다양한 수요에 맞추는 적절한 돌파구가 되리라고는 왜 생각하려 하지 않는가. 필요한 것은 행여 새 제도의 도입이 기존 교육·의료보험 체계에서 누리던 혜택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 새로운 제도의 도입 자체를 불확실한 가정에 의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건 의료건 평등이 추구하는 이념적 순결성에는 나 또한 일종의 숭고함마저 느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숭고함이 우리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느냐, 소비자들의 다양하고 정당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선택은 귀찮고 때로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비자가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과, 선택할 기회가 있는가 없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선택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결코 옳은 길이 아니다.

박태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