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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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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모든 사람의 바다 이야기
공허 지난 뒤 맑음의 경지

그는 바다의 시인이다. 등단작 ‘출항제’부터 35년이 흐른 요즘의 작품까지, 그의 시엔 바다의 심상이 빠지지 않는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빽빽이 늘어선 파라솔과 그 그늘 하나 차지하려 몰려드는 여름 휴가객들의 바다와는 다르다. 가난과 상처가 뒤얽힌 유년의 바다는 소년의 발을 묶어놓았던, ‘출항’을 해서라도 벗어나야할 무엇이었다. 그러나 물살을 거스르는 고행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향하는 연어처럼, 35년 시력을 쌓는 동안 시인은 끊임없이 바다로 향했다. 다른 누구도 쓸 수 없는, 자신만의 시를 찾아 체험의 세계로 향하는 회귀본능이었을 게다.

‘장엄해진다, 노을 강으로/무리지어 돌아오는 연어 떼!//지금, 울진 왕피천 하구는/저무는 날갯짓으로 요란하다!’(‘연어’ 중)

그의 바다는 바다에만 있지 않다. 잔술에 취해 토악질을 하는 사내에게서 바다가 보인다.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더니/사내가 울컥 한 마리 백상어를 토해낸다’(‘백상어’ 중)

바다의 시인에게 소금은 바다의 꽃이다. 해와 바람에 한참 시달리고서야 바다에서 벗어난 바다의 결정체. 말라붙은 눈물에 허연 소금기가 서리듯, 시어로 쓰인 소금은 은은히 빛나는 눈물이 된다.

‘나귀는 무거운 사연을 지고 터벅터벅/사막을 가로질러 왔을 것이다/(…)나귀, 여기저기에 제가 소금을 부려놓은 줄/문맥을 찍어 맛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었으리/나귀가 지고 온 것이 소금 가마니였음을/달빛이 적셔놓기까지 나도 미처 몰랐으니!’(‘나귀’ 중)

그는 꽃의 시인이다. 시인의 꽃에는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피비린내나는 죽음이 공존한다.

‘푸르디푸른 판유리를 미는/시뻘건 맨살들, 하늘 벽에 파고든/핏빛 너무 선명해서/어느새 너도 쉬 지워지리, 잔상만으로 아득하리’(‘맨드라미’ 중)

생과 사가 엇갈리고, 존재와 부재가 자리바꿈한다. 꽃보다 주어진 시간이 조금 더 길 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회갑을 넘긴 시인은 ‘그러고 보면 나 어느새 부재와도 사귈 나이,’(‘대추나무와 사귀다’ 중)라 하고 ‘마침내 뼛속으로 옮겨 앉은 집 허물지 못해/나 또한 퇴락을 안고 살아가느니’(‘낡은 집’ 중)라 고백한다.

김 시인은 예심위원 5명 전원의 추천으로 최종심 후보에 올랐다. 예심위원들은 신문에 게재할 대표작으로 ‘독창(毒瘡)’을 추천했다.

‘한 구덩이에 엉켜들었던 뱀들/봄이 오자 서로를 풀고 구덩이를 벗어났지만/그 혈거 깊디깊게 세월을 포박했으니/이 독창은 내가 내 몸을 후벼 파서 만든 암거(暗渠)!’(‘독창’ 중)

시인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시인은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천지간’을 대표작으로 골랐다. 시인만의 것이 아닌, 누구든 제 경험과 이해의 깊이만큼 헤아릴 바다 이야기. 이광호 예심위원은 “공허를 돌파한 뒤의 맑음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할머니·소녀 불균형 조합
현실의 기괴함과 어울려

단단한 근육을 지닌 노인이 아령을 하고 있다. 몇 발자국 뒤에는 그를 훔쳐보는 눈빛이 있다. 김밥 할머니다. 할머니는 정성들여 도시락을 싼다. 연근같이 억센 것은 빼고 소화되기 쉽게 다진 새우살을 넣은, 노인을 위한 맞춤 김밥이다. 그러고선 아령 하는 노인의 집을 찾아가 살짝 도시락을 놓고 나온다. 가슴앓이를 하는 소녀처럼.

10년 전 ‘고독과 결핍의 진정성이 뿜어내는 강렬한 힘’으로 주목받으며 등단한 강영숙은 여전히 고독을 그린다. 다리를 저는 알로에 가게 주인(『팔월의 식사』)에서 푸른 국경 너머를 꿈꾸는 난민 소녀(『리나』)를 지나 작가의 시선이 노인에 안착했다. 풍요롭기보다는 외롭고 위태위태한, 그러나 가슴 깊숙히 욕망을 품은 노인이다.

“우리는 보려고 하지 않지만 노인의 욕망도 사실 우리랑 똑같거든요. 굉장히 평범한 것에 대한 욕망,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설 속의 모든 것은 명료하지 않다. 뿌옇고 폐쇄적이다. “주름과 근육, 할머니와 소녀성이라는 불균형적인 조합”(심진경 예심위원)이 어딘지 모르게 기묘하다. 작가는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을 연민하는 게 아니라 단지 ‘풍경’을 본다”고 말한다. 무심한 듯, 냉소적인 듯. 작가가 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처럼 이들도 자신의 욕망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자기 연민은 없다. 김밥을 말고, 먹고, 나누어주는 행위를 그야말로 무심히 진행한다.

이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악취는 심해져만 간다. 변기가 역류하고 녹색물이 온 거리를 뒤덮는다. 끔찍한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모호한 현실은 음울하고 생경하다. 강영숙은 이 우울한 그림 안에 유머를 툭툭 던져 놓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그런데 순간 나를 공포로부터 구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똥냄새였다.’ 냄새 나는 현실이 오히려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건 삶의 아이러니다.

“시종일관 유머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물론 포복절도는 아니지만.”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다. ‘외롭다고 아무나 들이지 말라구요!’라고 할머니에게 면박을 주는 변기수리공. 불평도 없이 막힌 변기를 시원하게 뚫어주는 그를 두고 작가는 “건강함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튜닝’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돌아가죠.” “소설이 뭘까”란 진부한 물음에 ‘위안’이라는 단어를 불쑥 내놓은 작가의 해법이 여기에 있다. “2~3초마다 사건이 터지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위안이 필요하거든요. 문학에 그런 요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심진경 예심위원은 ”인물이 가진 불균형이 현실의 기괴함과 결합되면서 ‘낯선 매혹’을 느끼게 한다“고 평했다. 김동식 예심위원은 “이 공간 속에서 김밥을 말든 아령을 들든, 노인은 사회적 타자”라며 “우리도 모르게 이들을 불온한 존재로 바라본 것이 아닌지 하는 반성적 물음을 갖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구희언 대학생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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