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코노미>R&D도 協業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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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R&D는 연구개발(Research & Development)이다.제품과 그 제조과정(process)을 혁신시키고 향상시키는 노력이다.따라서 R&D투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으로 인식돼왔다.
뉴 이코노미의 기업세계는 생태체계(ecosystem)로 불린다.여러 산업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산업간에,업종간에 경계가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컴퓨터통신은 개인 컴퓨터(PC)산업과 소비자전자산업, 정보 및 통신산업등 최소한 네가지 산 업이 서로 맞물려있는 거대한 비즈니스 생태체계다.
지금까지 기업 R&D는 외부와 담을 쌓고 「뒤뜰」에서 몰래 벌이는 고독한 모험사업이었다.이 R&D독불장군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있다.혼자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 신기술제품이 시장에서 고립돼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꼬리를 문다 .
뉴 이코노미의 동태(動態)적 경쟁세계에서 R&D는 「연구및 흥정」(Research & Deal)으로 통한다.무턱대고 혼자서 개발할 것이 아니라 주변 연관산업체의 중요 수요업체들과 사전협의나 「흥정」을 통해 공동의 가치를 창출해나간 다.독창적 기술은 기업 혼자 개발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를 제품화하고 그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인정받아 계속 시장을 창출해나가는 일은혼자만의 힘으로 불가능하다.새 기술의 제품화에 주변산업의 여러업체들이 함께 참여해 그 기술을 중심으로 하나의 거대한 생태체계를 일궈나가야 장래를 보장받는다.여러분야가 협동해서 나눠먹는파이의 크기를 계속 키워나가는 격이다.
「혼연일체의 혁신과정」(seamless innovation process)이란 개념도 선보였다.사업을 일군다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대신 「연구및 흥정」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체계를 일군다는 뜻의 산업간. 기업간 「협업가정신」(intrapreneurship)이란 말도 생겨났다.
경쟁이 치열해지고,제품의 생명주기가 짧아지고,고객의 수요가 급변하는 상황일수록 「연구및 흥정」은 절실해진다.
R&D는 어차피 모험사업이다.혼자서 모든 위험을 감내하고 성공하면 그 열매를 혼자서 차지한다.그러나 그 열매를 독점하는 보장이 없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연구개발도 분야별.단계별로 주변 산업체와 분담해 위험부담을 분산시키는 쪽이 현명하다.기술혁신의 전략적 관리다.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츠선의 「생물학적 공동진화」개념이 각광을 받는다.상호의존적인 종(種)들이 호혜(互惠)과정을 거듭하며함께 진화하는 경우다.늑대는 약한 사슴들을 잡아먹는다.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사슴은 강해져야 한다.사슴들이 강해 지면 늑대도 더 강해져야 한다.이 과정이 거듭되면 생태체계속에 강한 사슴과강한 늑대만이 살아남는다.
경쟁만도,그렇다고 협력만도 아니다.제품의 판매가 벽에 부닥치면 최고경영자들은 제품의 질과 제조과정 서비스를 개선하라고 R&D팀을 다그친다.이는 묵은 방식이다.밖으로 눈을 돌려 혁신의잠재적 센터를 찾아내고 「협업가정신」을 통해 「 더 큰 그림」으로 엮어나가야 한다.R&D의 험난한 새 세계다.
〈본사 칼럼니스트〉 변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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